기업에 준조세「손벌리기」여전…정부등 각종명목 기금요청

  • 입력 1998년 12월 17일 19시 21분


지난달 12일 열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 5대재벌의 개혁이 숨가쁘게 진행돼 긴장감이 고조됐던 회의장에는 색다른 안건이 탁상위에 올랐다.

바로 3·1절 기념탑 건립기금과 결식아동돕기 기금 모금건. 평통자문회의 간부로서 기념탑 건립위원장을 맡고 있는 L씨와 정부 고위인사가 각각 재벌그룹에 요청, 회장단 안건으로 부쳐진 것.

기념탑 공사는 8월 착공했지만 IMF한파로 기금 마련이 여의치 않자 H그룹에까지 SOS를 쳤다는 게 전경련측 설명. 교육부 주관사업인 결식아동돕기도 모금액이 턱없이 적어 성과를 내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총수들은 과거 정권시절 익히 겪었던 일이었지만 모금 취지가 좋다고 판단, 사안별로 5억, 60억원씩을 모아주기로 선뜻 의견을 모았다. 총대는 주로 자금사정이 좋은 5대그룹이 멨다.

국민정부 들어 힘깨나 쓰는 기관들이 재벌그룹에 손 내미는 구태는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 그러나 ‘선단식(船團式)경영을 해체한다’며 서슬퍼런 정부측 인사들 상당수는 아직도 각종 명목의 기금을 걷을 때마다 ‘선단경영의 선장’들을 찾고 있다.

전경련 회장단이 두건의 성금안을 처리한 뒤에도 △독립유공자 기념회관 건립기금 △아시아경기 선수단 격려금 등 수백, 수천만원대의 후원금이 줄을 이었다. 1억원대 미만의 ‘군소 후원금’은 아예 사무국 전결사항.

그래도 전경련에는 ‘여과된’ 요청만이 접수돼 다행이다. A그룹 관계자는 “한해 성격이 애매한 단체들이 후원을 요청하는 것만 해도 1백건이 넘는다”며 “엄선해 지원해도 한해 1백억원은 후딱 넘어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전경련 관계자는 “대그룹들이 사정이 어려운 단체나 사업을 돕는 것은 당연하다”면서도 “그룹단위로 할당하는 형식은 이제 사라질 때가 됐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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