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빅딜은 현대 잔치상』 시끌…1위 굳혀

  • 입력 1998년 12월 23일 19시 41분


‘현대그룹의 독무대.’

재계에선 요즘 5대 재벌간 빅딜(사업구조조정)의 손익계산을 놓고 이런 말이 무성하다.

실제 현대는 정부의 재벌개혁 드라이브속에 ‘몸통 도려내기’로 안팎이 시끄러운 다른 그룹과 달리 기아자동차 등 대형 사업체를 잇따라 사들이는가 하면 대북사업과 금융 방위산업 등에서도 순식간에 영역을 확대했다.

현대의 독주가 계속되자 다른 재벌들은 드디어 ‘정부가 현대편을 드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눈길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선 이를 둘러싼 별의 별 소문이 난무하고 있다.

▼부동의 1위 재벌로 부상〓5대그룹 8개업종(자동차포함)의 빅딜은 기본적으로 부실 사업부문을 계열에서 분리한 후 외자를 유치한다는 구도에서 출발했다. 항공 철도차량 유화 등이 대표적인 사례.

그러나 현대는 일부 부실부문을 계열에서 떼어내면서도 한화에너지 기아 아시아자동차 등 굵직굵직한 기업을 차지하는 수완을 보였다.

반도체산업의 구조조정도 현대가 강조했던 ‘통합우위론’이 대세로 받아들여진 상태. 통합에 다소 미온적이었던 LG는 정부와 통치권의 강력한 경고성 발언 이후 ‘회사를 내놓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반도체 전문가들은 경영주체가 어느 쪽으로 결정되더라도 부채비율이 높은 현대가 통합혜택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갖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잇따른 대형사업 인수로 현대는 재계 쌍두마차였던 삼성그룹을 10조원 이상(매출액 기준) 제치고 부동의 최대그룹으로 떠올랐다.

▼정부와 현대,‘신 밀월시대’〓김영삼(金泳三)정부 시절 현대는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대선출마로 미운 털이 박혀 불이익을 당했다. 세무조사와 금융권 여신규제, 제철사업 진출 봉쇄 등이 대표적인 사례들.

그러나 현대는 국민의 정부 들어 금융권 구조조정의 ‘뜨거운 감자’였던 부실덩어리 한남투신을 전격 인수, 금융감독위원회의 근심을 덜어줬다.

현대는 또 금강산 관광사업을 특유의 뚝심으로 밀어붙여 제 궤도에 올려놓았다. 금강산 사업이 좌초했을 경우 정부의 햇볕정책은 실체없는 구호에 그칠 가능성이 컸으나 현대로 인해 상황이 1백80도 반전됐다는 후문.

빅딜의 막판 걸림돌로 부상했던 발전설비 선박용엔진의 통합도 현대가 한국중공업에 사업부문을 넘기기로 결정해 모양새를 살릴 수 있었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의 가려운 데를 적절하게 긁어준 것이 밀월관계 구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고조되는 재계의 불만〓재계에서는 최근 ‘현대와 정부간 물밑 교감이 드디어 현대 편들기로 노골화됐다’는 의혹이 팽배하다.

국방부는 최근 중형잠수함 도입사업을 경쟁체제로 개편한다고 발표, 현대중공업이 참여할 길을 터줬다. 정부가 방위산업의 특성을 들어 기존 대우중공업과의 수의계약의 불가피성을 주장했던 것이 불과 1년전 일. 독점업체였던 대우는 물론 다른 그룹 관계자들도 “철도차량 항공기산업 등을 독과점체제로 재편하려는 빅딜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현대가 12%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강원은행과 조흥은행, 현대종금의 통합도 결과적으로 현대에 유리하게 흘러갈 공산이 크다. 현대는 현 은행법상 시중은행 지분을 4% 이상 가질 수 없는 만큼 통합은행의 나머지 지분을 무의결권 우선주 형태로 확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중 은행 소유제한이 해제될 경우 신설은행의 소유권 다툼에서 현대가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것은 당연한 결과. 전국적인 지점망을 가질 신설은행을 장악할 경우 현대의 자금흐름은 훨씬 원활해질 것으로 보인다.

B그룹 관계자는 “현대가 국민투신 등 계열사 인맥을 총동원, 정치권에 줄을 댄 것으로 파악된다”며 “현대의 몸집 불리기는 재벌 구조조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명약관화하지만 대세가 그런 걸 어떻게 하겠느냐”고 우려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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