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만 해도 이름난 외국회사일수록 본사에서 파견한 ‘파란 눈’ 사장에게 한국시장을 맡겼던 것에 비하면 크게 달라진 분위기.
12월 들어서만 피앤지 켈로그 볼보자동차 등이 한국인에게 새로이 경영을 맡겼다. 줄곧 외국인이 사장을 맡았던 한국피앤지는 28일 브래들리 어윈 사장의 후임에 쌍용제지 사장으로 있던 차석용(車錫勇·45)사장을 임명했다.
농심켈로그도 이달초 신현수(申鉉秀·45)한국펩시콜라사장을 대표로 영입했다. 전임도 한국 출신의 이종석(李宗錫)사장이었지만 이사장은 재미교포였으므로 ‘순수 토종’은 신사장이 처음인 셈.
볼보자동차코리아는 29일 수입차업계에서 최초로 한국인 전문경영인인 이동명(李東明)상무를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이에 앞서 10월에는 동양인으로서는 최초로 김동수(金東秀·51)㈜듀폰사장이 듀폰 아태지역 총책임자로 발탁되기도 했다.
‘토종’바람이 거세기는 컨설팅 업계도 만만치 않다.
보스턴컨설팅 서울사무소에는 내년 1월1일자로 두 명의 한국인 ‘파트너’가 탄생한다. 지사장급인 파트너는 컨설팅 업계에서 군대의 장성급에 비유될 정도의 위치. 전세계적으로 3백여명인 전체 파트너들 가운데 한 명이라도 반대하면 승진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번에 이병남(李秉南·36) 이재현(李在現·35)씨 등 30대 두 명이 동시에 파트너로 승진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한국의 컨설팅 시장 규모가 그만큼 커졌음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해석. 앤더슨컨설팅도 이재형(李在亨·48)이사가 4월 서울사무소 총괄사장으로 취임했다.
이처럼 다국적기업들이 전에 없이 한국인을 중용하는 추세에 대해 전문가들은 “외국기업들이 본사의 경영시스템이나 기업문화를 한국지사에 이식시키는 안정기를 거쳐 이제 적극적인 현지화 전략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한다.
15년간 외국기업 중역급 헤드헌팅을 전문으로 해온 ‘SH장 어소시에이츠’의 장성현(張晟鉉·59)사장은 “외국어능력이나 경영 지식 등이 비슷하다면 한국시장을 잘 아는 사람에게 경영을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초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가 국내에 진출한 지 20년만에 처음으로 한국인인 손영석(孫永錫·45)사장을 대표자리에 앉혀 어려운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작년보다 45%나 늘어난 매출을 기록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
이밖에 외국기업에서 토종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대표적 경영자로는 김재민(金宰民·46)한국마이크로소프트사장 정용환(鄭龍煥·45)인텔코리아사장 강성욱(姜聲郁·37)한국컴팩사장 박영미(朴英美·41·여)리바이스코리아사장 염진섭(廉振燮·44)야후코리아사장 등이 꼽힌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