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원대의 설비와 인력을 통합하는 과정이 순탄치는 않겠지만 이번 LG측의 100% 지분 양도 결정으로 현대전자 LG반도체 양사의 재무구조 개선은 물론 해당 그룹과 국가 전체의 대외신인도 제고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LG측은 전날까지도 반도체 경영권에 강한 집착을 보였지만 향후 강도를 높여갈 여신제재가 그룹 경영에 미칠 악영향과 ‘과감한 포기’가 가져올 반대급부를 저울질한 뒤 경영주체를 현대에 완전히 넘기기로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LG의 대승적 결단〓구본무(具本茂)회장의 전격적인 사업 포기결정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로 그룹 안팎에 엄청난 충격을 던졌다. 그룹 자금수지를 매일 점검하며 ‘결사항전’태세를 보였던 구조조정본부측은 전날까지도 “6개월동안 버틸 여유자금을 확보했다”며 정부와 현대측의 태도 변화를 기대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채권단의 여신제재가 기존여신에 대한 만기연장 불허 등으로 강도를 높일 경우 그룹 전체의 신용도가 흔들리고 소비재 위주의 그룹 사업구조상 그룹 이미지에도 결정적인 타격을 줄 우려가 커 ‘조기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청와대측은 이와 함께 “한국의 신용등급을 ‘투자적격’으로 상향시키는 데 반도체통합이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며 LG의 대승적인 결단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속화할 통합 작업〓LG측이 당초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어 반도체사업의 포기를 결정함으로써 통합의 ‘기술적’ 난제의 상당부분은 쉽게 풀릴 전망.
LG가 7대3으로 통합하는 방안보다 지분을 완전히 포기하는 방안을 선택한 배경엔 30%의 지분을 갖더라도 손실분담 원칙에 따라 그룹이 부채의 상당부분을 짊어지는 만큼 아예 포기함으로써 ‘실리’를 극대화하려는 의도가 깔린 것으로 해석된다.
또 양 총수간 공동 발표를 해도 좋을 포기선언을 구회장이 굳이 청와대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만나 직접 전달했다는 점에서 ‘추후의 보상’을 염두에 둔 분위기조성용 이었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실제로 지분양도는 현금으로 이뤄지더라도 LG의 양보에 대한 대가로 현대가 모종의 반대급부를 약속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초 70%의 지분을 경영주체에 몰아준 뒤 외자를 유치, 특별결의 가능지분(35%)를 갖게 한다는 빅딜구도는 ‘현대의 경영권 유지―외자 소폭 지분참여’ 구도로 흘러갈 가능성이 커졌다.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는 세계 반도체 판도에서 통합사의 경영권을 국내업체가 유지하는 것은 향후 메모리 반도체의 국제 헤게모니 싸움에서도 유리할 것으로 업계는 내다본다.
통합법인은 양사에 대한 세부적인 실사과정을 거친 뒤 빠르면 3,4월중 출범할 것으로 보인다. 또 평가를 맡았던 미 컨설팅업체 아서 D 리틀(ADL)이 제시한 ‘통합전제’에 맞춰 액정표시장치(LCD)과 통신단말기 부문 등 비반도체 부문의 분리작업을 거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 반도체시장의 지각변동 예고〓현대전자와 LG반도체가 통합할 경우 삼성전자(시장점유율 18.8%)에 이어 세계시장 점유율 2위업체로 부상한다. 지난해말 기준 현대전자 9%, LG반도체 6.7%(히타치 주문자상표부착생산방식 제외)의 점유율로 각각 세계시장에서 3,6위에 올랐으나 이를 합칠 경우 미 마이크론 테크놀러지(14.1%)를 누르고 2위로 부상할 전망.
생산설비 기준으로는 64메가D램의 경우 월 2천7백만개로 삼성전자의 2천만개를 제치고 세계 최대업체로 부상한다. 국제 시장가격을 좌우할 만한 협상력을 갖추게 된다는 점 때문에 국제 메모리업계는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통합협상을 관망해왔다.
그러나 양사의 설비 공정 등이 상이한 만큼 통합과정에 불협화음이 속출할 경우 이제 막 증산쪽으로 돌아선 미국 일본업체에 시장을 잠식당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또 강력한 메모리업체의 탄생을 견제하려는 외국업체의 반덤핑 및 반독점관련 공세도 현실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박래정·임규진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