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굵직굵직한 사업건을 잇따라 터뜨리고 있는 현대의 자금조달 능력을 눈여겨 보고 있다. 현대가 판을 벌여놓은 현안사업 중 1조원 이상이 필요한 사업만 해도 열거하려면 열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다.
일단 기아자동차는 3월까지 주식대금 1조1천여억원을 납입해야 한다. 여기다 기아자동차를 정상화하는 데도 그 몇배의 돈이 필요하다. 한화에너지 인수 한남투신 현대종금을 조흥은행 및 강원은행과 합병하는 과정에서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게다가 LG반도체 인수는 7대3 지분이 100% 인수로 바뀌면서 더욱 부담이 커졌다. 거기에다 대북사업과 관련해 6년에 걸쳐 9억4천만달러를 북한에 지급해야 하고 금강산일대 개발사업 비용까지 포함하면 총금액은 천문학적 숫자가 된다.
현대 주변에서는 이런 사업들에 필요한 돈이 최소한 10조원 이상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대측은 자금조달에 공식적으론 대단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박세용(朴世勇)현대구조조정본부장은 “반도체 인수 등 각종 사업에 10조원까지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얼마가 들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많은 사업부를 매각해 상당한 자금을 축적해뒀다”고 말했다.
현대는 그룹 부채비율이 97년말 570%에서 98년말 330%로 낮아진 것이 이를 입증한다고 말한다.
특히 올한해 동안 활발한 자산매각과 54억달러에 달하는 외국자본 도입 등으로 총 15조원의 자금을 조달한다는 계획.
그러나 이런 낙관론은 다분히 현대의 희망섞인 시나리오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가령 반도체 통합에서 7대3지분으로 대비해오던 현대는 LG의 100% 완전철수 제의에 당혹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대가 믿는 또하나의 ‘금고’는 정부지원. 12월7일 정재계 합의사항대로 통합법인의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과정에서 채권단이 절반 이하 범위에서 부담만 해준다면 출자전환 등 방식을 통해 부담이 최소화될 수 있다는 기대다.
설사 자금측면에서 다소 부담이 된다고 해도 털어내는 사업에 대한 각종 혜택과 구조조정 과정의 정부지원및 출자전환 등을 감안하면 종합적인 타산에서 엄청나게 수지 맞는 ‘장사’라는 게 현대측의 판단인 듯 하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