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97년 상반기 한은의 건의와 보고에 담긴 위기감은 그다지 긴박해 보이지는 않는다. 게다가 97년 8월12일 마련한 ‘기아사태 이후의 해외차입 여건변화와 대책’이라는 보고서에서 “해외차입여건이 크게 악화됐지만 10∼12월엔 외환보유고가 증가할 것”이라고 오판하기도 했다.
▽환란 원인 진단〓한은은 “대기업의 과도한 빚경영이 금융기관의 불합리한 여신관행과 맞물려 금융시스템을 멍들게 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 대기업들이 연쇄적으로 부도사태에 직면하면서 멍든 금융시스템은 국제금융시장에 고스란히 노출됐고 이는 국가신용도 하락으로 연결됐다는 것.
▽IMF행 건의는 누가 먼저 했나〓한은은 97년 3월에 IMF자금지원 문제를 재경부에 건의했으며 같은 해 10월27일에도 같은 내용을 보고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경부가 특위에 제출한 자료에는 97년10월28일 한은과의 외환시장 관련 회의에서 처음 제기했으며 11월 7일 청와대 회의때는 양쪽 모두 IMF 필요성을 건의한 것으로 돼 있다.
문제는 건의의 강도. 한은이 건의했던 ‘자금지원’은 97년말 한국이 실제로 받았던 5백억달러에 달하는 ‘긴급구제금융’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10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은이 말하는 IMF지원이란 IMF내 한국의 지분을 근거로 받는 ‘정규융자 33억달러’에 불과하다.
▽환율방어 제대로 했나〓18일 청문회에서 자민련 정우택(鄭宇澤)의원은 “97년10월 이후 재경원이 무리한 환율방어를 위해 1백50억달러의 가용외환보유액을 허비했다”고 지적했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97년 10월부터 재경원이 시장개입을 직접 지시했으며 특히 11월초부터는 한은은 반대했으나 재경원이 외국환관리규정을 들어 공문을 통해 시장개입을 직접 지시했다”고 밝히고 있다.
문제는 당시 시장개입을 했어야 옳았느냐 하는 점. 당시 재경원은 드러내놓고 기업이 외화예금 형태로 보유한 달러를 내놓을 것을 종용했지만 우리나라가 신뢰를 잃어 원―달러 환율이 급상승하는 마당에 얼마 안되는 외환보유고를 갖고 외환시장에 직접 개입한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용재기자〉y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