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 이윤수(李允洙)의원 등은 94년 당시 김철수(金喆壽)상공부장관 박재윤(朴在潤)청와대경제수석 등은 삼성의 자동차진출에 대해 반대했으나 10월 한이헌(韓利憲)경제수석이 새로 취임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신발산업 등 사양산업 중심의 지역경제가 불황에 빠져 삼성차 유치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었다.
이에 한수석이 당시 박관용(朴寬用)청와대비서실장 홍인길(洪仁吉)청와대총무수석 최형우(崔炯佑) 강경식(姜慶植·뒤에 부총리) 서석재(徐錫宰)의원 등 부산출신 관료 및 정치인들과 함께 삼성차 부산유치에 발벗고 나섰다는 것. 특히 동래출신으로 ‘삼성차 부산유치위원회’위원장을 맡고 있던 강전부총리는 국회의정보고서 인사말에서 “삼성차 부산유치를 처음 제안한 사람으로 자동차산업이 부산에 유치돼야 하는 이유와 당위성을 모월간지에 긴급 기고하겠다”고 말했을 정도.이들의 노력에 의해 결국 이건희(李健熙)삼성회장과 김전대통령간에 밀약이 맺어지고 94년 12월5일 삼성의 승용차 기술도입신고서가 상공부에 접수된 지 3일만에 전격수리됐다는 것이다.
당시 삼성의 기술도입신고를 전결 수리한 홍순직(洪淳直)상공부 수송기계과장이 작년 1월까지 삼성자동차 전무로 근무했으며 현재도 삼성전관 전무로 있는 것이 삼성차를 인가한 공로가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홍씨는 공무원 퇴임규정상 일정기간 업무와 관련된 기업에 입사하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95년 삼성경제연구소에 입사했다가 96년 중반 삼성차전무로 자리를 옮겼다. 홍씨외에 전직 상공부 주사 신모씨 등 4,5명이 삼성그룹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태영(朴泰榮)산업자원부 장관은 “수리과정에 법적 행정적 하자는 없었다고 본다”며 “그러나 당시 세계화나 시장경제론에 휩쓸려 국민경제에 미칠 영향이 큰 대규모 투자사업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역할이 정립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답변했다.
이날 청문회에서는 기아자동차 아시아자동차 등의 분식회계를 통한 비자금 조성의혹도 심도깊게 다뤄졌다. 국민회의 김영환(金榮煥)의원 등은 “아시아자동차는 91년부터 97년까지 비용처리해야 할 1천7백61억원을 가공의 고정자산과 가공의 매출채권으로 조작 계상했다”고 주장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