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전선 「초보 전성시대」…『내수부진-취업난뚫자』

  • 입력 1999년 1월 25일 19시 16분


토요일인 23일 오전 인천 부두 국제 여객 터미널. 중국 위하이(威海)로 떠나는 뉴골든브리지호를 타기 위해 길게 줄을 선 승객들 가운데는 큼지막한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이 유난히 많다. 이들은 서울 남대문시장 등에서 옷가지 등을 받아다 중국 상인에게 넘겨주고 바로 돌아오는 이른바 ‘보따리 무역상’.

“1년전만 해도 화교 승객이 가장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한국인 보따리장사꾼이 전체 승객의 3분의 2를 넘어요.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요.”

뉴골든브리지호를 운영하는 위동항운 홍기현(洪琪玹)인천사무소장은 “또 ‘아줌마’ 일색이던 것이 남녀노소 다양해졌다”면서 “규모도 조금씩 커지는 것 같다”고 전했다.

무역협회가 실직자를 위해 무역업 창업 강좌를 열고 있는 서울 서초동국제무역연수원을 가봐도 이런 현상은 마찬가지. 60명이 이달초부터 40일 코스로 매일 4시간씩 무역 실무를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연수원 관계자는 “은행이나 현대 삼성 등 대기업 간부 출신으로부터 20대 미혼여성까지 수강하고 있다”며 “80% 가량은 무역에 완전 초보자들”이라고 전했다.

무역전선에 ‘왕초보’들의 창업붐이 일고 있다. 회사에서 감원된 실직자에서부터 대학을 갓 졸업한 취업예비생, 변신하는 샐러리맨 그리고 캠퍼스의 교수님과 재학생, 아줌마 부대까지 창업사장의 면면도 다양하다. 내수가 부진하자 해외로 눈을 돌려 돌파구를 뚫으려는 이들에 의해 바야흐로 ‘무역 대중화 시대‘가 열리고 있는 셈.

취업재수생인 김태성(金兌成·29)씨는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요즘 무역회사 창업준비에 바쁘다.

“취업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현실에서 뭔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대학때 부전공한 경험을 살려 러시아 전문 무역을 시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달에 두번씩 소규모 무역 창업 강좌를 여는 박준모(朴俊模)씨는 “강좌마다 아마추어 예비 무역창업자들로 가득찬다”면서 “전에 없던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교수와 학생의 무역회사 창업도 새로운 현상. 전주 우석대 유통통상학부는 교수와 학생들이 ‘유니트레이드’라는 무역회사를 직접 차렸다. 실전 경험을 익혀 장차 무역업 창업에 대비하겠다는 취지.

컴퓨터 클릭 한번으로 간단히 무역업을 할 수 있는 인터넷의 발달도 무역대중화를 촉진하고 있다.

무역업 창업 열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98년말 무역업체는 7만4천5백77개사로 97년말 7만3백73개사에 비해 4천2백4개사가 늘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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