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협상은 한국이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나 회생국면으로 돌아서는 기사회생의 분기점이었다.
당시 한국의 경제상황은 국제통화기금(IMF)의 자금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가 회복되지 않아 외화유동성 사정이 계속 악화되던 시기였다.
7대 시중은행의 외채만기연장률이 97년 10월 86.5%, 12월 32.2%로 급격하게 하락했다. 정부가 IMF 지원을 받아 마련한 달러를 금융기관의 외채를 갚는데 사용해야 할 위기에 몰렸던 것.
외환보유액에서 금융기관의 외채상환을 지원해주는 규모가 97년 11월 89억3천만달러에서 12월 1백43억6천만달러로 급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미 재무부 및 IMF와 협의, 금융기관의 외채만기 협상에 나서 지난해 1월28일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외채 만기를 1∼3년씩 연장하는데 성공했다.
이후부터 한국의 외화유동성 부족에 대한 외국투자자들의 우려가 크게 가시기 시작하면서 외환사정이 급격히 호전됐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와 피치IBCA는 협상타결 직후 한국의 신용등급을 3단계와 5단계 상향조정했다.
금융기관의 단기채무 만기연장률도 98년 1월 79.7%로 껑충 뛰었고 지난해 말에는 93.7%까지 높아졌다.
외국인들의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환율이 안정세로 돌아섰고 가용외환보유액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97년말 88억달러에 불과했던 가용외환보유액은 98년 1월 1백23억달러로 증가했고 협상타결 후인 2월에는 1백85억달러로 급증했다.
외환보유액은 이후 줄곧 증가해 지난해말 현재 4백85억달러 규모로 늘어났다.
한때 1천9백원대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도 안정세로 돌아서 외채협상 직후인 지난해 2월 1천6백40원에서 3월들어 1천3백78원으로 떨어졌다.
원―달러 환율은 이후 1천2백∼1천3백원을 오르내리다 12월들어 1천2백7원까지 떨어졌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지난해 한국 경제는 단기외채 만기연장과 러시아 모라토리엄이라는 두 번의 결정적인 위기를 맞았다”며 “첫번째 시험대를 무사히 통과함에 따라 극적인 회생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