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부조리]영농지원 뒷전 「돈놀이」주력

  • 입력 1999년 2월 23일 19시 28분


61년 발족 이래 몸집키우기에만 몰두해온 ‘공룡조직’ 농협이 마침내 개혁의 도마위에 오르게 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2일 국무회의에서 농협 부조리와 비능률 척결을 강도높게 지시하자 농협 안팎에서는 ‘올 것이 왔다’는 반응과 함께 개혁의 강도와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농협은 농민을 위한 조직인가〓농협이 조합원인 농민들의 원성을 사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농민단체들은 농협이 △관료화한 조직문화 △영농지원 활동을 등한시하는 업무행태 △고리(高利) 대출관행 등에 빠져들어 ‘농민을 위한 조직체’임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지적한다.

농협은 전국에 1천2백여개의 단위 조합망을 갖추고 있으며 직원수가 7만여명에 이른다. 무역 화학 유통 금융 등 출자회사가 20개를 넘는다. ‘문어발식 확장으로 일구어 낸 준(準)재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치권에서 거론되는 ‘농협 비리’는 감사원이 파악한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점들. 감사원은 지난해 9월부터 약 3개월에 걸쳐 농협과 축협을 대상으로 실시한 감사결과를 다음달초 발표할 예정이다.

감사원 감사에서 확인된 농협비리의 유형에는 △대기업 부실채권 양산 △저리정책자금의 무자격자 대출 △정책자금의 용도외사용 △비정상적 명목의 직원수당 지급 △방만한 조직 확장 등이 망라된 것으로 전해졌다.

농협 등 협동조합의 상호금융 대출금리는 연 14.5%. 정부의 종용으로 지난해보다 약간 낮아졌지만 98년말 현재 예대마진은 5.56%포인트로 시중은행보다 여전히 2%포인트 가량 높다. 이 때문에 농민단체들은 “농가부채 문제를 심화시킨 한 원인을 농협이 제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부실대출 관행은 일반 은행과 닮은 꼴〓농협은 농민 등의 예금으로 조성한 돈을 치밀한 검토없이 대기업에 대한 대출이나 지급보증에 썼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의 부실채권은 무려 1조원대에 이른다. 부실채권은 대부분 다른 금융기관의 대기업 대출에 지급보증을 해줬다가 해당기업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떠안게 된 것.

▽개혁 방향 및 농협의 움직임〓이번 김대통령의 질책은 지지부진한 협동조합 통폐합과 일련의 내부 개혁을 더욱 강도높게 추진하라는 주문으로 해석된다.

23일 오전에 열린 농협중앙회 확대간부회의는 시종 긴장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과장급이상 간부가 참석한 이날 회의에서 원철희(元喆喜)농협회장은 “대통령 말씀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과 농가부채 경감에 노력하고 우리 내부의 비능률적인 요소를 과감하게 개혁하자”고 말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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