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등 지배주주가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인식했던 것이 한국의 기업풍토였다. 소액주주운동은 ‘주식회사의 주인은 주주’라는 당연한 원리를 확인시켜 주었다. 주주대표소송, 장부열람권 등 법전 속에 잠자고 있던 소액주주의 권리를 일깨워준 것이다.
제일은행 전현직 이사들에 대한 4백억원 손해배상판결, 13시간반에 걸친 삼성전자 주주총회 등은 최근 소액주주운동의 대표적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액주주운동은 부당내부거래 등 관행화된 재벌기업의 불법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추궁과 총수의 경영 전횡을 적절하게 견제했다고 자부한다. 이 운동을 통해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불러온 재벌들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를 추궁하고 바로잡는데 제한적이지만 상당한 기여를 했다.
최근 재벌그룹들이 소액주주운동에 대해 공개적인 비판에 나선 것도 역설적으로 보면 이 운동의 의의를 확인시켜주고 있다.
한보철강이나 삼성자동차에서 보듯이 견제받지 않는 총수 개인의 독단적 의사결정이 해당 기업은 물론 국가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 재벌총수가 불과 2%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100%의 권한을 행사하는 반(反)주식회사적 경영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3일 일본에서는 홋카이도 다쿠쇼쿠은행의 경영자들이 배임혐의로 구속됐다. 회수할 수 없음을 알면서도 부실대출을 해준 것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물은 것이다.
재벌그룹들은 주주대표소송이 보신주의적 경영행태를 조장한다고 비판하지만 시민단체가 책임을 추궁하는 대상은 경영행위 전반이 아니라 부당내부거래 등 위법행위나 회사에 손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이뤄진 부실경영 행위에 제한돼 있다.
한 은행 임원은 “제일은행 판결로 이제 부당한 대출압력을 거부할 수 있게 됐다”며 소액주주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책임을 추궁당하지 않는 재벌총수가 무제한의 권한을 행사하고 경영자가 회사와 주주에 대한 책임보다는 재벌총수 한 사람에게만 충성하는 전근대적인 기업풍토로는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김기식<참여연대 정책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