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기자회견은 우여곡절 끝에 이뤄졌다. 오전 일찍 그룹에서 기자회견을 예고했으나 정회장쪽에서 취소통보를 했다가 다시 개최하기로 오락가락해 그룹과 정회장측간 막바지 이견조정이 쉽지 않았음을 짐작케 했다. 이때문에 “정세영회장이 아직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러나 정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형님(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과 나 사이에 갈등은 전혀 없었으며 행복한 마음으로 현대를 떠난다”고 말해 불화설을 일축했다. 자신이 직접 작성했다고 하는 회견문 곳곳에서도 형에 대한 감사의 심정을 유난히 강조했다. 정세영회장은 “현대산업개발 외에 추가적인 보상이 없다”고 말해 두 형제간 ‘정산’은 표면적으로는 완료됐다.
정회장의 분가로 정주영회장 형제들의 20여년에 걸친 재산분할도 마무리됐다. 정주영회장의 동생들은 77년 첫째 인영(한라그룹), 80년대 중반 막내 상영(금강, 현재는 KCC), 88년 둘째 순영(성우)의 순으로 그룹에서 떨어져 나갔다.(셋째 신영씨는 작고)
이로써 현대 일가의 핵분열은 ‘2중 구도’의 윤곽을 분명히 드러냈다. 1세들로 이뤄진 축이 한편에 자리잡고 다른 축에는 정몽구회장과 정몽헌회장(건설 전자)을 중심으로 몽근(금강개발)몽준(현대중공업) 몽윤(현대할부금융) 몽일(현대종합금융) 등 2세형제들이 포진한 양상이다.
정세영회장의 독립으로 현대가 장기적으로 추진중인 5개 전문업종별 소그룹화도 앞으로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자동차를 2000년까지 그룹에서 완전 분리하겠다고 밝힌 현대는 올들어서도 현대해상화재와 금강개발 등 상당수 계열사를 분리한 바 있다. 현대로서는 재벌 구조조정과 형제―자식들간 재산분할이라는 두가지 ‘숙제’를 동시에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