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재벌이후」새활로는 어디에?]

  • 입력 1999년 3월 28일 19시 43분


‘재벌체제의 대안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비관론이 급속히 확산되고있다. 외화부도위기극복 외자유치 등 현안이 진정기미를 보이면서 재벌해체이후 차세대 산업구도에 대한 불안감이 불거지고있는 것.

▽한국이 정신 나갔다〓지난 1월 전경련이 주도한 유럽지역 로드쇼에 참가했던 재계 인사 C씨는 충격을 받았다. 공식석상에서 한국경제의 불투명성 등 폐단을 지적했던 그들 중 상당수가 사석에선 “한국이 정신나갔다”며 “반강제적으로 받아들인 앵글로색슨계 모델이 자리잡으면 한국은 무엇으로 세계와 경쟁할 것인가”라고 물었던 것. 그들 중엔 우리경제의 산업발전 단계, 자본시장 성숙도, 경제의식 등을 감안할 때 작금의 경제정책을 ‘플라이급 선수가 헤비급 선수와 싸우려는 시도’로 보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수십개 계열사를 가진 그룹이 마치 한 회사처럼 움직이며 국제경쟁을 벌여온 재벌체제가 끝난 후의 한국경제를 걱정하는 기류가 국제사회에 강하게 퍼져있다.

▽비관(悲觀)증후군〓주요 그룹 싱크탱크인 경제연구소들은 요즘 그룹과 우리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느라 분주하지만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는 최근 “노동 자본투입 둔화뿐만 아니라 경제 전반의 효율성이 훼손돼 2000년대 들어서도 3% 안팎의 성장에 그치고 실업률도 7%대 밑으로 내려가긴 어려울 것”이란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다. 삼성연구소 관계자는 “신정부 경제운용 모델이 지속되는 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김주형(金柱亨)상무는 “주력수출품 대부분이 국제경쟁이 치열한 제품들”이라며 “기술개발이 지지부진하고 교역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경제성장률은 2%대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재벌체제의 대안(代案)〓정부는 재벌부재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 선진국형 자본시장 도입과 벤처 및 지식산업 육성을 서두른다. 남일총한국개발연구원(KDI)법경제팀장은 효자산업 발굴이 사실상 어려워졌다는 민간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합리적이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사업계획에 대해 외국인투자자들의 투자를 유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발상의 전환을 촉구한다.

최낙균한국산업연구원(KIET)산업정책실 연구위원도 “서로 다른 그룹들의전업(專業)기업간전략적제휴를 통해 연구개발 부담을줄이는등위험을분산시킬수있다”며 “상황이 그다지 비관적이진 않다”라고 주장했다.

▽재벌와해와 함께 ‘기업관’도 바뀌어야〓IMF체제 들어 민간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 중의 하나는 ‘안전(安全)경영’을 맹종하는 사회적 분위기.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사장은 “미래의 고수익을 노리고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는 기업가정신의 기본 덕목의 하나”라며 “위험을 안지 않으려 한다면 우리경제의 미래도약은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단기적인 주주이익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다. 대기업이 곧 재벌이라는 막연한 등식도 문제다. 정순원현대경제연구원 부사장은 “재벌체제의 도덕적 해이와 기업은 별개”라며 “건전한 기업비판이 경쟁력을 키운다”고 말했다.

〈박래정·이명재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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