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년 주식시장 개방 후 장기보유를 원칙으로 하던 외국인들이 한국시장에 적응하면서 최근엔 ‘단타성’ 매매도 서슴지 않는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호종목도 대형 우량주에서 이른바 ‘2류주식’으로 바뀔 조짐.
외국인들이 주식 순매도세로 돌아선데다 이처럼 달라진 태도를 보이자 증권업계는 “외국인들이 약아졌다”며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블루칩에 미련없다〓한국전력 삼성전자 주택은행 현대건설 등 이른바 ‘블루칩’을 팔기 시작했다. 그 대신 업종 대표주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저평가 주식들에 관심.
워버그딜론리드증권에 따르면 외국인들은 보유주식의 가격이 미리 정해놓은 목표에 도달하면 블루칩에 연연하지 않고 처분한다는 것. 갈아탈 주식은 1류, 2류주를 가리지 않는다.
한국전력은 17일부터 8일연속(영업일 기준) 4백43만주 가량 순매도. 삼성전자의 경우 22일 한때 목표가격 10만원을 넘어서자 ‘팔자’물량이 쏟아져 24일부터 25만주나 순매도했다. 새로운 리딩뱅크로 부상하고 있는 주택은행 역시 22일이후 1백44만주를 순매도했다.
▽초단기 매매도 즐긴다〓24일 미국 인터넷 검색업체 라이코스사와의 합작계약 체결소식이 전해진 미래산업이 대표적.
장중 호재가 알려져 주가가 급등하자 외국인들은 그동안 꾸준히 사들이던 미래산업 주식 35만주를 하루에 순매도했다. 반대로 25일엔 ‘외국인들이 털었다’는 소식으로 주가가 하락하자 다시 1백28만주나 사들이다 26일에는 41만주를 순매도하는 등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쟈딘플레밍증권의 한 임원은 “상하한가 폭이 15%로 늘어나면서 타이밍을 놓치지 않으려는 외국인들이 많아졌다”며 “특히 홍콩 등 아시아계가 단기매매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대유리젠트증권 김경신(金鏡信)이사는 “외국인들의 단타성 매매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과민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외국인들의 행태에 부화뇌동하면 이들의 영향력이 실제 주식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커질 수 있다는 것.
▽매수대기도 많다〓꾸준히 ‘사자’주문을 내 3월결산을 앞둔 금융기관들의 막대한 매도물량을 소화해 온 외국인들은 24일부터 ‘팔자’로 돌아섰다.
순매도 규모는 24일 2백48억원, 25일 4백4억원, 26일 2백58억원 등. 많지는 않지만 절대 매도규모가 1천억원대를 훨씬 웃돌아 일반 투자자들에게 불안감을 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증권사들은 아직 “크게 걱정할 것은 못된다”는 입장. ABN암로아시아증권 관계자는 “외국인들의 매수 대기물량이 종합주가지수 600선에 많이 몰려있어 순매도는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