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상품 납품 쟁탈전 치열…제조업체 사활걸어

  • 입력 1999년 4월 6일 19시 22분


제조업체 사이에 유통업체의 자체브랜드인 PB(Private Brand)상품을 납품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PB란 유통업체가 제조업체로부터 상품을 저렴하게 받아 유통업체의 이름으로 판매하는 상품을 가리키는 말. 가격경쟁력을 가진 PB상품은 유통업이 제조업을 지배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할인점 E마트가 올해초 자장면을 PB상품으로 기획하자 삼양식품 빙그레 오뚜기 등은 납품업체로 선정되기 위해 달려들었다. 특히 삼양라면은 97년 E마트로부터 PB라면을 납품해달라는 요청을 받고서도 머뭇거리다 빙그레에 빼앗기는 바람에 시장점유율이 떨어진 경험을 갖고 있어 더욱 적극적이었다. 삼양라면은 4천5백여명에게 11가지 종류의 시제품을 테스트하는 등의 각종 호조건을 내건 끝에 최근 ‘E플러스 볶음짜장면’을 납품하는데 성공했다. PB를 둘러싼 싸움이 갈수록 치열해지자 제조업체에서는 “PB는 ‘피튀기는 브랜드’의 준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

PB쟁탈전에서는 그룹 관계사와의 의리도 없다. 한화그룹에서 분리된 빙그레는 한화유통으로부터 PB라면을 납품해줄 것을 요청받았지만 들은체 만체. 국내 최대의 15개 할인점을 구축한 E마트가 구매력에서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화유통은 빙그레우유 대신 축협우유를 받아 ‘굿앤칩’이라는 PB상품으로 팔고 있다.

유통업체끼리도 PB를 둘러싼 신경전이 치열하다. 얼마전 부산에 신규점포를 낸 H할인점은 화장지 식용유 등 PB상품을 납품할 제조업체를 선정했으나 경쟁 할인점이 해당업체를 회유하는 바람에 유통업체 간의 감정이 험악해졌다.

유통업계의 한 관계자는 “PB는 유통업체가 주도적으로 가격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는 품목”이라며 “가격경쟁이 뜨거워지다보면 아예 상대업체의 PB거래를 빼앗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PB의 최대장점은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직거래를 통해 물류비 판매관리비 등의 제반비용가격을 낮추면서도 제조업체의 기존 브랜드를 취급하는 도소매업체와 마찰을 피할 수 있다는 것.

국내에서 생산되는 PB상품은 라면 우유 피자 등 식료품에서 젖병 자동차와이퍼 전화기 등 3백여품목이나 된다. 할인점시장이 급속히 커지면서 앞으로는 가전제품 공장의 일부라인을 PB상품용으로 만들어 TV 냉장고 등을 생산하는 것도 가능해질 전망.

업계에서는 PB시장이 98년 1천1백억원에서 2003년 3조6천억원으로 신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김홍중기자〉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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