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는 3만개의 제품을 수입해간 일본 업체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3만개 중 단 한 개의 불량품도 나오지 않았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고맙다.”
이같은 성장의 비결에 대해 성사장은 “중국 현지 경영에서 성공한 덕분”이라고 말한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에 있는 영백의 본사에는 개발 마케팅 인력 20명만 근무하고 있다. 반면 91년 이전한 중국 (山東)성 웨이하이(威海)의 현지공장에는 3백명의 종업원이 일한다.
90년대 들어 가파른 인건비 상승을 견디지 못한 국내 의류업체들이 해외로 공장을 이전할 때 영백도 중국으로 공장을 옮겼다.
성사장은 많은 국내업체들이 현지공장 경영에서 겪는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지 채용 인력에 갖은 공을 쏟았다.
최고급 시설로 기숙사를 지어 대부분의 종업원들이 이곳에서 생활하도록 했다. 중국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목욕탕까지 갖춘 기숙사를 보고 중국인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직원들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면서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데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걸핏하면 직장을 그만두는 습성의 중국인들이지만 영백의 공장은 현재 이직률 제로(0)를 자랑한다.중국 정부로부터 여러번 최우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97년말 대량주문을 받고 원자재 수입신용장을 개설하려던 영백은 IMF체제로 몸을 사리는 거래은행으로부터 “수입신용장 개설이 어렵다”는 통보를 받았다. 발을 동동 구르던 영백측에 중국의 원자재 공급업체가 팩스를 보내왔다.
“외상으로 원단을 보낼 테니 제품을 수출한 뒤 대금을 결제하라”는 제의였다.현지의 원자재 업체들과 쌓아둔 신뢰관계가 위기에서 결정적 도움이 된 사례.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