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는 현재 슈퍼컴퓨터에 가까운 성능의 PC들이 개발되면서 그 인기가 식을 줄 모른다. 그러나 새로운 정보기기들의 등장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탈(脫)PC 세계로 진입하고 있다”는 폴 혼 미국 IBM연구소장의 말처럼 제2의 정보혁명이 서서히 밀려오고 있다.
PC의 종말을 예고하는 대표적인 징후는 ‘돌연변이 컴퓨터’들. 미국 3com사가 선보인 개인휴대정보단말기(PDA) ‘팜파일롯’. 인터넷과 간단한 업무를 손쉽게 처리해주는 전자수첩형 컴퓨터. 애플의 ‘노턴’, 국내에서 개발된 ‘셀빅’ 등 PDA는 손바닥에 쏙 들어가는 컴퓨터로 휴대전화와 새 컴퓨터의 전형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진영이 표준으로 밀고 있는 HPC(Hand Held PC)도 PDA처럼 새 PC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포석.
그러나 이들 휴대용 컴퓨터들이 PC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선 필기체인식 및 음성인식 기능이 더 발전해야 한다는 과제를 안고 있다.
미국 실리콘밸리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 이곳에는 이른바 ‘안경컴퓨터’ ‘모자컴퓨터’ ‘허리띠컴퓨터’ ‘손목시계컴퓨터’ ‘열쇠고리컴퓨터’같은 기기묘묘한 컴퓨터들이 개발되고 있다.
이른바 ‘유비퀴터스(Ubiquitous)컴퓨터’라고 불리는 이 기기들은 기존 PC의 마우스와 키보드에서 과감히 벗어나 말과 시선,몸 동작 등으로 명령을 내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추진중인 ‘편리한 생활(Easy Living)’이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발 책임작인 스티븐 세퍼박사는 “21세기에는 사람의 목소리 표정 감정 상태를 알아채고 이에 응답하는 컴퓨터가 나올 것”이라고 말한다.
MIT대 미래학연구소 미디어랩의 네그로폰테교수도 “1대의 컴퓨터를 1백명의 연구자가 함께 쓰던 시대에서 한 사람이 1백대의 컴퓨터를 쓰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연구소에서는 이미 ‘옷처럼 착용하는 컴퓨터’ 시제품을 개발했다. “미래에는 ‘먹는 컴퓨터’가 나올지도 모른다”고 농담할 정도.
‘퍼스널’에서 ‘모바일(moblie)’로의 이동도 활기를 띠고 있다. 인터넷 접속과 개인스케줄을 관리할 수 있는 ‘스마트폰’이라는 지능형 휴대전화 단말기의 개발이 한 예. 삼성전자 LG전자 등을 비롯해 모토로라 에릭슨 노키아같은 단말기제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스마트폰을 내놓고 있다.
거꾸로 가정에 있는 가전기기도 PC를 위협하고 있다. 통신망의 고속화에 힘입어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비디오게임기 전화 등이 인터넷과 맞물리면서 ‘지능화’되고 있다. 이미 시판중인 ‘웹TV’는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쓰면서 고화질의 영화와 PC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시제품만 나와 있는 지능형 전자레인지나 냉장고를 인터넷에 연결해 요리법이나 다이어트 정보를 찾기도 하고 전자가계부로 활용할 수 있다. PC는 ‘인터넷가전’의 등장으로 가정에서조차 ‘퇴출’될 날이 가까워진 셈이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발표한 ‘PC중심시대의 종말’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인터넷가전은 미국내에서 2002년까지 연평균 96.3%씩 급증해 4천1백79만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러한 탈PC 추세에도 불구하고 PC가 완전히 멸종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적다. 폴 혼소장은 “TV나 라디오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PC도 사멸하진 않는다”며 미래에는 PC가 전문 연구를 위한 도구로 다시 자리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