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본보회장 회견]『경제-군사협력 추진』

  • 입력 1999년 4월 23일 19시 38분


내달 17일의 이스라엘 총선이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세기적 전환기의 국제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중동평화협상의 향방이 이 총선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김병관(金炳琯)동아일보회장이 이스라엘 건국 51주년 기념일인 22일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대통령관저에서 에제르 와이즈만 대통령과 만나 총선과 중동평화협상,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와 한―이 양국관계 심화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이번 이스라엘 총선은 비단 이스라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거결과는 중동평화협상의 앞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중동문제는 이미 세계의 문제입니다. 모든 구원(舊怨)을 해소하고 넘어간다는새밀레니엄의문턱에서문제해결의전기가마련되기를진심으로바랍니다.

▼ 이-팔 평화협상 곧 재개 ▼

“총선에서 누가 총리가 되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협상은 반드시 재개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2백50만명의 인구와 가자지구를 비롯한 7개 지역에 대해 주권을 행사해 사실상 국가로서의 지위를 향유하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저는 김회장님과의 회견이 끝나는대로 곧바로 이집트로 건너가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과 평화협상문제를 논의할 것입니다.”

―총선후에 현 집권당인 리쿠르드당과 야당인 노동당이 이른바 대연정(National Unity Government)을 구성해 평화협상에 적극 나설 것이라는 예측도 있더군요.

“그렇게 되기를 충심으로 바랍니다. 어느 국가건 외교정책은 초당적인 기반 위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국민적 컨센서스가 없이는 어떤 정책도 성공할 수 없습니다. 정권의 필요에 따라 정책이 바뀌면 주변국가들과의 긴장관계는 계속되고 그 피해는 결국 국민들이 보게됩니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오슬로협정에 따라 다음달 4일에는 팔레스타인 독립을 선포하겠다고 말했습니다만….

“아라파트는 적어도 총선후 우리측의 평화협상 재개 노력을 보고 나서 강행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모든 평화협상은 쌍방 당사자간의 무한한 인내 위에서만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한반도 역시 아직도 평화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라면 다음 세기에도 ‘지구상의 마지막 냉전지대’라는 불명예가 따라다니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김대중(金大中)정부는 집권후 일관되게 대북 화해 포용정책인 햇볕정책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남북관계는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전쟁과는 달리 피와 언어가 같은 형제들끼리의 매우 부자연스러운 갈등입니다. 김대통령께서 햇볕정책을 추구한 이래 남북간 긴장이 상당부분 완화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교정책은 언제나 국민적 합의 위에서 추진돼야 합니다. 상대방을 포용하는데 있어서도 국민적 컨센서스가 잘 이뤄져 있다면 그 성과는 더 클 것입니다. 저는 이번(24일)에 중국을 방문합니다만 김회장님께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과 시각을 묻고 싶습니다.”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이나 중국은 북한을 지지하면서도 북한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현상을 깨뜨리지 못하도록 견제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유익한 설명 같습니다. 이번 중국 방문 때 그걸 확실히 알아 볼 생각입니다.”

―남북관계 개선을 가로막는 현안 중에는 북한의 미사일문제도 들어 있습니다. 이 문제에는 이스라엘도 관심을 갖고 있으리라고 봅니다. 한―이 양국이 이에 대한정보교환이나정기적인정책협의회같은 것을 갖는다면 서로 유익하지 않을까요.

“북한의 미사일 개발과 수출에 대해서는 우리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한국은 군사분야에서 보다 많은 협력이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란과 같은 역내국가들의 미사일 개발을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미사일문제에 대한 양국간 정보교환과 정책협의는 좋은 구상으로서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대(對)아시아 경협과 교역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한―이 양국은 산업과 교역이 상호 보완적이어서 유리한 점이 매우 많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은 가공업에서, 이스라엘은 방위산업을 비롯한 첨단분야에서 비교우위가 있기 때문에 협력 잠재력이 크다는 것이지요. 두 나라가 긴밀히 협력해 제삼국에 공동진출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제2차 세계대전때 영국군 전투비행사로 참전했던 저는 그 후에 일어난 6·25전쟁을 매우 관심있게 지켜보았고 그 후에도 한국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한국은 이스라엘에 매우 중요한 국가입니다. 과거에는 영국 미국 일본 자동차가 차례로 이스라엘 시장을 석권했으나 요즘에는 한국 자동차가 누비고 있습니다.(웃음) 한―이 양국이 협력하면 서로에 이익이 되는 일이 많을 것입니다. ”

▼ 한국인들의 애정에 감사 ▼

―이번 이스라엘 방문에서 저는 밀레니엄 준비를 위한 뜨거운 열기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밀레니엄이란 말 자체가 기독교적인 함의를 갖고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인류가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고 새 천년을 맞는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입니다. 한국에서도 밀레니엄 준비가 한창이고 많은 사람들이 밀레니엄 맞이 성지순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이 양국이 정부와 민간 차원에서 밀레니엄사업을 공동추진할 수 있는 방안은 없겠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많은 한국인들이 특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고 우리를 찾아주는데 대해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광보다는 고난이 더 많았던 한―이 양국에 새 밀레니엄은 종교를 떠나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두 나라가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대통령을 동아일보와 고려대가 주관하는 인촌 기념강좌에 초대하고 싶습니다. 인촌 기념강좌는 동아일보와 고려대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87년에 개설된 강좌로 그동안 마거릿 대처 전 영국총리,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총리, 김대중대통령,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일본총리 등이 초청돼 세계문제에 대한 탁견을 들려주셨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오셔서 ‘중동과 세계평화’라는 주제로 특강을 해주신다면 우리 국민의 중동평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데 크게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초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총선후의 국내 일정 등을 고려할 때 지금 당장은 어렵습니다만 저는 언제든지 한국을 방문해 한국민들과 함께 평화를 주제로 얘기할 기회가 오기를 기다려 왔습니다.”

―긴 시간 귀중한 말씀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통령을 서울에서 뵐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예루살렘〓이재호·신치영기자〉leejae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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