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민주노총은 △일방적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중단 △노동시간 단축 △실질적 사회안전망 구축을 통한 실업자 생계 보장 △산별교섭체계 보장 등 4대 요구를 제시하며 정부와의 직접 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이중 핵심은 일방적 구조조정 중단과 정부와의 직접 교섭. 즉 기획예산위의 공기업 구조조정 지침(인원감축, 인건비 4.5% 삭감, 퇴직금누진제와 체력단련비 폐지, 학자금 융자로 전환 등)은 노동계와 충분한 사전협의 없이 개별 공기업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만들어 졌으므로 철회하고 새로운 구조조정의 원칙과 방향을 정하자는 논리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부의 방침은 확고하다.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구조조정 자체가 자칫 ‘집단이기주의’라는 풍랑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사용자측을 배제한 노정 직접 교섭도 어불성설이라는 것.
근로시간 단축에 대해서는 정부가 한국노총과의 실무교섭에서 노사정위에서 논의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99년중 관련 법안을 마련한다는 입장을 정리했는데 논란의 여지는 많다. 각종 수당 등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민주노총이 파업을 풀고 노사정위에 복귀한다 해도 쉽게 결론날 사안은 아니다.
사회안전망 구축 문제는 정부도 추진중인 사항이므로 별 논란거리가 되지 않는다. 산업별 교섭체계 보장은 민주노총이 산별 노조 건설이라는 장기 목표 속에 제기하는 슬로건으로 정부나 재계 일각에서도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반응인 상황.
★배경과 원인★
지난해 2월6일 노사정(勞使政)은 ‘경제위기 극복과 재도약을 위한 노사정 공동선언문’, 이른바 노사정 대타협을 도출하고 90개 항목에 합의했으나 지난해 말부터는 노동계에서 “정부와 노사정위를 믿을 수 없다. 노사정위를 탈퇴해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볼멘소리가 공공연히 나오기 시작했다. 금융부문 구조조정에서는 손쓸 틈없이 밀렸으나 공공부문 및 대기업 구조조정에서는 더이상 밀려서는 안된다는 주장이 현장 정서를 주도해 나갔다.
이렇게 된 데는 정부가 구실을 제공한 측면이 없지 않다.
제1기 노사정위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6월3일 출범한 제2기 노사정위는 공공부문 및 금융부문 구조조정 협의를 위해 우여곡절끝에 공공부문구조조정특위(6월27일)와 금융산업발전대책위(7월1일)를 구성했는데 실질적인 활동은 하지 못했다. 정부로서는 국가경제적 차원에서 공기업 민영화 및 퇴출은행 등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노동계는 노사정위를 ‘들러리’로 이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반발했다.
또 노사정위 법제화, 실직자 초(超)기업단위 노조 가입 허용, 교원노조법, 정치자금법(노조의 정치자금 기부 허용) 제정 개정 등에 합의하고 근로시간 단축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도 논의하기로 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불만이다.
노사정위 법제화를 놓고 노동부와 노사정위 간에 신경전을 벌이다 노동계가 강경투쟁으로 치닫자 이번 임시국회에 서둘러 상정할 예정이나 실직자 초기업단위 노조가입 허용 문제는 법무부의 반대로 국무회의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
교원노조법은 1월초 겨우 국회를 통과했고 정치자금법 개정은 이번 임시국회에 상정할 예정이지만 노동계는 “해야 하는 것이지”하며 냉랭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정치적 약속’이라며 한국노총이 제기해 온 문제로 민주노총 파업과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하지만 정부가 최근 ‘올해말까지’ 관련 법을 개정하겠다고 하자 재계가 ‘밀약설’을 제기하며 노사정위를 탈퇴해 노동정국을 복잡하게 꼬이게 하고 있는 중요한 이슈다.
여기에 민주노총에 ‘우호적’이라고 여겼던 김대중정부에 대한 소원함 등도 얽혀 강경파의 입지를 강화하고 있다.
김대통령 취임 1주년 사면복권 때 민주노총은 8백92명의 사면복권 대상 명단을 비공식적으로 전달했으나 실제는 1백43명이 사면복권됐다. 턱없이 부족했다는 주장이다.
민주노총의 이번 파업투쟁은 이와 함께 정치세력화와도 무관하지 않다. 민주노총은 오래전부터 진보정당 건설에 적극 참여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여당이 선거법 개정을 추진하면서 ‘전국적 정당명부제’가 아닌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도입하기로 해 진보정당의 정치권 진입 통로가 막히게 된 것도 민주노총을 강성으로 내모는 배경이 되고 있다.
★전망★
양측은 “이번 사태가 향후 노사관계의 향방을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이번 기회에…”하며 ‘불법필벌(不法必罰)’의 원칙으로 새로운 노사관계를 수립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민주노총이 일전불사(一戰不死)의 기세를 보이는 등 제로섬 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파업사태가 어떻게 전개돼 나갈지는 변수가 많아 예측하기 힘들다. 우선 26일 예정된 한국통신 파업의 강도와 지속성 여부, 27일 파업을 예고한 금속산업연맹이 어느 정도의 파업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가 당장의 변수다. 특히 금속산업연맹의 파업 여부는 ‘노정대립’이 ‘노사대립’으로 확산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나 결정적 관건은 여론의 향배라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의 파업과 정부의 강경대응과 관련, 대다수의 시민과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회복기에 접어든 경제와 대외신인도 등을 고려해 무조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경제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지만 바닥경제는 아직도 먹구름이 드리우고 있다” “노동부문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IMF한파에 희생당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재벌기업의 부실과 마찬가지로 공기업의 부실도 청산돼야 한다” “민주노총의 이번 파업으로 경제가 위축되고 국가신인도가 떨어지면 민주노총과 정부가 함께 책임을 져야 한다” “재벌빅딜에 1년여를 끌려 다닌 정부가 노동자를 위해서는 무엇을 했는가” 등 일반 시민들의 따가운 여론을 양측 모두 겸허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파업을 철회하면 대화할 여지가 있을 수 있으나 파업중에는 어떠한 대화도 할 수 없다”며 선(先)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그러나 정부도 이같은 ‘원칙적 입장’만 고수할 것이 아니라 노조의 대화를 유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높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