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은 청량리 경동시장, 성남시장 등과 함께 대표적인 식료품 ‘깡시장’. 제조업체들이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대리점에 헐값으로 ‘날린’ 물건들이 소매점으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다.
3∼4평 남짓한 상점 내부 창고에는 라면 식용유 과자 등 여러 회사의 제품들이 빼곡이 쌓여있고 골목 어귀에는 식료품 회사 마크를 부착한 소형 트럭들이 분주히 제품을 실어 나른다. 거리 곳곳에는 물건을 떼러온 소매업자들과 ‘깡업자’들의 흥정 장면도 눈에 들어온다.
최근 식료품 제조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깡시장’은 더욱 번창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철저하게 현찰로만 거래가 이뤄지며 대부분 무자료거래. 10%의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유통 질서를 어지럽히고 제품의 원가 상승을 부추겨 결국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킨다.
영등포 깡시장에서 유통되는 1백50g들이 봉지커피는 4천3백원 내외. 세금을 포함한 공장출고원가 4천9백원보다 6백원이나 싸고 6천2백원인 소비자 가격과 비교하면 ‘헐값’수준이다. 오뚜기와 제일제당이 치열한 시장 쟁탈전을 벌이는 참기름(5백㎖)도 ‘깡거래’ 인기품목. 공장도가격이 6천5백원, 소비자가격이 1만원에 달하지만 이곳에서는 3천∼4천원에 오간다.
이처럼 원가보다도 훨씬 싼 제품이 유통될 수 있는 것은 시장점유율 확대와 신제품 홍보를 위해 제조업체들이 ‘제살깎기’경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 제조업체는 과다한 물량을 대리점에 떠넘기면서 대리점이 그 물량을 모두 소화하면 3∼5%의 ‘판매장려금’을 지급한다.
현금을 융통해야 하는 대리점들은 떠안은 물건을 원가보다 싼 값에 깡시장에 처분하고 그에 따른 손실은 제조업체가 지원하는 ‘판매장려금’으로 충당한다.
대리점과 깡업자들은 세무조사에 대비해 식당이나 정상적인 유통업체 등 거래선과 짜고 매출을 실제보다 늘려잡거나 전문업자로부터 가짜세금계산서를 구입하는 수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유통업계는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전국 깡시장의 매출규모가 수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유통업체 관계자는 “도저히 불가능한 가격에 물건이 대량 유통됨으로써 정상적으로 세금을 내고 장사하는 선량한 업체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깡시장 번창은 제조업체나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시장질서를 무너뜨린다”고 지적했다.
〈이 훈기자〉dreamlan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