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당시 정부가 중복과잉 범주에 넣었던 업종이 불과 1년만에 풀가동 체제에 돌입하는가 하면 기존설비의 가동을 전제로 한 빅딜도 논의되고 있어 인위적인 산업 구조조정의 한계와 후유증이 우려된다.
▽정부의 중복과잉 ‘잣대’〓지난해 8월 정부가 대표적인 중복과잉으로 밝힌 업종은 자동차 유화 조선 반도체 철강 발전설비 액정화면(LCD) 시멘트 철도차량 항공기 등 10개.
이중 LCD는 삼성 LG 등이 최근 세계적인 품귀현상을 타고 24시간 풀가동체제에 돌입했고 향후 성장성을 높이 산 네덜란드 필립스가 LG―LCD에 지분참여를 약속했다.
반도체빅딜과 관련, 업계에서는 “현대전자가 LG반도체를 인수하더라도 당분간 기존 설비를 끌고 갈 수밖에 없다”며 “우리 메모리업계가 국제 경쟁력과 시장지배력을 갖춘 만큼 세계적 중복과잉을 ‘기회’로 살리는 자세가 아쉬웠다”고 말한다.
조선도 현재 현대 대우 삼성중공업 3사가 향후 2년동안의 일감을 확보해 놓았다.
▽설비조정 없는 빅딜〓자동차 구조조정의 핵심인 삼성자동차는 ‘가동을 기정사실화한 채’ 가동에 따른 손해를 보전하는 방안이 대우 삼성그룹간 논의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 “부산민심을 감안해 설비를 돌리면서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를 하려니 해법이 안보인다”고 털어 놓는다.
5대 재벌은 정부가 자의적으로 진단한 중복과잉 업종 대부분을 빅딜대상으로 삼아 ‘자율’이란 모양새를 살리면서 업체간 협상을 진행중이다. 전경련 관계자는 “(빅딜을 통해)정부로부터 세제 및 금융지원을 유도하면 재무구조 개선에 큰 도움이 될 것이란 공감대가 있었다”고 말한다. 유휴설비 조정보다 쌓인 부실과 미래의 화근(禍根)을 제거하려는 목적이었다.
빅딜협상이 마무리단계인 정유(한화에너지→현대정유) 유화(삼성종합화학+현대석유화학) 등은 대규모 장치산업이란 특성 탓에 애초 설비조정의 여지는 매우 좁았다.
철도차량 항공 등은 채권단의 독촉에 못이겨 각사가 20∼30%의 고정자산을 처분해 통합하기로 했지만 기술획득 목적의 소규모 외자유치를 추진하고 있어 향후 막대한 독점이윤을 재벌들에 몰아준다는 비판이 일 조짐이다.
▽무분별한 과잉투자에는 제동〓빅딜이 재벌간 무분별한 시설투자에 제동을 걸어 향후 중복과잉을 예방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란 기대는 있다. 이종원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빅딜논의로 시장참여자가 줄어든 만큼 경쟁적인 중복투자의 가능성은 작아졌다”고 말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