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관행 여전 『기업들은 괴롭다』

  • 입력 1999년 6월 2일 18시 44분


국민의 정부 들어서도 준조세(準租稅) 관행이 여전하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청와대가 직접 사회단체들로부터 필요한 성금 목표액을 ‘접수’해 경제단체에 전달했던 방식이 ‘직접 전달’로 바뀌었을 뿐이다.

정부는 기업 준조세 문제가 여론의 도마에 오를 때마다 시정을 약속했다. 그러나 당장 각종 사회단체 사업이 무산될 위기에 빠지면 대기업들에 성금요청에 협조하도록 우회적으로 압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준조세 실태〓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회의엔 굵직굵직한 기부금 요청건이 심심찮게 안건으로 오른다. 지난 연말 회의엔 유력 정치인인 L씨 등이 요청한 3·1절 기념탑 건립기금과 결식아동돕기 기금모금에 5대그룹이 65억원을 분담키로 결정했다.

전경련은 아시아경기 선수단격려금 등 1억원 미만의 후원금은 아예 회장단회의 안건에도 올리지 않고 사무국 전결사항으로 처리한다. 전경련 관계자는 “한해 60억원 정도의 예산을 ‘사회공헌회계’로 잡아 집행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회원사로부터 따로 성금을 걷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A그룹 관계자는 “정부와 사회단체로부터 기부금 요청을 받는 건수가 한 해 1백여건에 이른다”며 “사안을 엄격히 심사, 지원해도 한 해에 1백억원을 넘어설 때가 많다”고 털어놨다.

▽기업 자율성을 살려줘야〓준조세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여론도 만만찮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하나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들은 기부금을 내는 과정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그동안 정부단체나 사회단체들이 돈을 거둬 생색을 내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불만이다. 최근 대한적십자사측의 비료보내기 성금요청도 기업간 합의수준을 훨씬 넘는 금액을 추가로 내놓으라고 요구한 것이 문제라고 재계는 입을 모은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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