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딜레마」…무역업계 『수출 비상』

  • 입력 1999년 6월 16일 19시 07분


16일 오전 무역회관에서 열린 산업자원부 장관과 무역업계의 조찬간담회에서 한 중소기업 대표가 정덕구(鄭德龜)장관에게 환율안정대책을 호소했다.

“원―달러 환율이 자꾸 하락해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달러당 1160원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는 중소업체들이 수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적정환율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정부가 세워달라.”

정장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거침없이 얘기하던 다른 문제와는 달리 “환율은 제가 무어라고 얘기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며 답변을 피했다.

환율안정 대책을 요구하는 무역업계와 “환율은 시장에 맡겨야 할 문제”라는 정부의 시각차가 극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환율을 둘러싸고 수출업계의 ‘정부개입론’과 정부의 ‘시장주의’가 맞선 상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환율급락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수출업체들은 줄기차게 정부가 환율에 적극 개입해 안정시켜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정부가 올해 초 적정환율을 1250∼1300원으로 제시해서 업체들이 거기에 맞춰 수출계약을 했다”며 “환율이 떨어지면 당연히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과거 환율이 불안할 때면 정부가 시장에 뛰어들어 안정시키는 것을 자주 봐왔던 터라 정부 개입을 당연시하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올들어 환율에 대해 철저한 ‘불간섭 주의’로 나가고 있다. 수시로 환율안정 대책을 내놓았던 작년과는 대조적이다.

수출업계를 대변하는 무역협회의 태도도 달라졌다. 작년에는 “환율안정은 무역업계의 최우선과제로 정부의 적절한 개입은 당연하다”면서 대정부 건의를 활발히 내놓았으나 올들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무협관계자는 “환율에 대해 정부측으로부터 최대한 말을 아끼도록 주문받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이처럼 신중해진 것은 외국으로부터 “수출업체에 불공정 지원을 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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