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전말 ■
민씨 송환에 대해 현대와 북한측, 남북 당국자간에 원칙적인 합의를 이룬 시점은 24일 오전. 이때까지만 해도 25,26일 중 민씨를 석방한다는 원칙만 합의됐을 뿐 민씨의 송환경로나 정확한 시간은 미정이었다는 것.
중국 베이징(北京)에 머물고 있던 현대협상팀의 김윤규(金潤圭)현대아산사장은 이날 오후 다급하게 북한 아태평화위 관계자들에게 전화로 결단을 요구했으나 북한측은 “우리도 훈령을 기다리고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해 현대측의 애를 태웠다.
한편 현대측은 북한측이 25일이나 26일경 민씨를 석방할 것이란 사실을 우리 정부에 긴급히 보고했고, 보고를 받은 황원탁(黃源卓)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24일 낮 기자간담회를 통해 “주말경 풀려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공식 언급했다.
25일 오전 평양에서 훈령을 받은 북한 아태평화위 관계자들이 현대측에 25일 밤 민씨를 석방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하면서 협상이 막바지에 접어들었다.이와 함께 관광객들을 위한 신변안전보장 협상도 빠른 속도로 진행돼 현대관계자들의 얼굴에 미소가 감돌기 시작했다.
또한 북한측이 당초 밝힌 것보다 민씨 석방시점(오후6시15분)이 앞당겨지자 임동원(林東源)통일부장관마저도 “어떻게 된 일이냐”라며 아주 기뻐했다는 것.
민씨의 석방이 돌파구를 찾은 것은 민씨와 북한조사기관 사이에 무언가 매듭이 풀렸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분석.
민씨는 당초 ‘귀순공작요원’임을 자인하는 내용의 자술서를 쓰라는 북한측 요구를 거부했고, 이 때문에 북한도 민씨의 석방이 어렵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그러다 24일 오전 민씨와 북한사이에 ‘적절한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막후채널 ■
민씨 송환을 위한 북한측과의 협상채널은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베이징에서 열린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간의 공식채널이고 다른 하나는 김보현(金保鉉)국무총리특보와 전금철(全今哲)아태평화위 부위원장간의 막후채널.
김특보와 전부위원장은 지난해 현대의 금강산 관광사업과 현재 베이징에서 열리고 있는 남북 차관급회담을 성사시킨 막후 장본인. 김특보는 현대와 북한측간에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판문점을 통해 북한의 전부위원장에게 여러 차례 전화통지문을 보내 민씨의 석방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베이징에서 김특보보다 급이 낮은 관계기관 실무자들이 북한 아태평화위 실무자들을 직접 만나 ‘김―전’라인을 가동시켰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 관계자도 “정부측 막후접촉채널은 복수로 보면 된다”고 말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정부는 민씨의 석방이 확인된 뒤에도 ‘김―전’ 라인이 막후채널로 가동됐다는 사실을 끝내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황수석에 의해 남북 당국자간 막후접촉 채널의 존재가 확인된 뒤 정부 관계자들이 매우 당혹스러워했다는 후문이다.
■협상주역 ■
민씨 석방에 가장 큰 공을 세운 협상의 주역은 과연 누구일까. 현대측에서는 “뭐니뭐니해도 김윤규현대아산사장이 핵심주역”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의 신뢰를 받고 있는 김사장이 협상의 전권을 쥐고 합류함으로써 타결이 빨라질 수 있었다는 게 현대측의 평가다.
그러나 협상의 최종단계에서는 남북 당국간 막후채널의 역할이 더 컸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김사장도 베이징으로 출발하기 하루 전인 22일 통일부에 들러 대북협상에 대한 정부측 지침을 전달받았다.
따라서 당국자간 접촉을 막후에서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김보현총리특보의 역할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임동원장관도 민씨 석방 직후 “지금으로서는 현대와 북한 아태평화위가 협상의 주역이었다고 말해야겠지…”라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윤영찬·공종식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