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 전격세무조사 배경]재벌개혁 고삐죄기 신호탄

  • 입력 1999년 6월 29일 22시 52분


국세청이 20일 전격적으로 한진그룹 주력 계열사에 대해 특별 세무조사에 나선 것은 말그대로 ‘특별한’ 배경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측은 도대체 무엇 때문에 조사를 받는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고 국세청은 ‘정치적 의미’나 ‘상부의 지시’는 없었다고 강조하고 있으나 국세청의 말을 액면그대로 믿긴 어렵다.

국세청은 이날 한진그룹 4개 계열사에 150여명의 조사요원을 투입했다. 91년11월 정주영(鄭周永)현대그룹명예회장의 정치참여로 미운털이 박혔던 현대그룹 주력 계열사에 대한 전면 세무조사를 당했을 때도 투입인원은 90여명 정도였다.95년 고 최종현(崔鍾賢)회장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때와 비교해봐도 재계랭킹 6위정도의 그룹에 대한 조사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인원이 동원된 것이다.

이때문에 일부에서는 이번 조사가 국세청의 설명처럼 법인세 탈세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한진그룹의 전반적인 경영비리를 포착, 오너가(家)에 혹독한 책임을 묻기 위한 사전 준비작업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이번에 조사대상에 포함된 정석기업은 조중훈(趙重勳) 그룹회장의 제주도목장 등 회장 일가의 재산을 관리하는 기업이라는 점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국세청 고위관계자도 “5대그룹 계열사에 대한 세무조사도 수시로 벌이고 있으며 이번 조사도 이와 같은 선상에서 봐달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면서도 한진에 대한 조사가 ‘특별 세무조사’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것도개별사안에대해보안을 지켜온 국세청으로선 대단히 이례적이다.

통상적으로 이뤄지는 정기세무조사는 특정사업연도 1년에 대해 회계장부를 조사하는 것으로 끝나는데 반해 특별세무조사는 수년간의 경영실적에 대해 해당 기업의 거래처에 대한 조사는 물론 금융계좌 추적까지 샅샅이 뒤지게 된다. 그만큼 조사의 강도가 높고 규모가 크다.

주력기업의 장부를 다 압수해 갔으므로 정상적인 경영이 불가능해지고 이과정에서 한진그룹은 영업에서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것이 예상된다.

특히 이번 특별세무조사는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처음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구조조정이 부진한 재벌에 대해 정부의 압박이 더욱 거세질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재벌개혁이 지지부진해 정부가 세무조사라는 초고강도의 압박수단을 동원했다는 시각이다.28일 청와대가 기업의 개혁의지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과 함께 강도높은 재벌개혁을 천명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가능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최근 잦은 항공사고 이후 조중훈회장 일가가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대한항공에 대해 25.3%의 지분을 보유하며 후선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재벌의 소유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려는 정부의 의도와는 거리가 있었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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