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차 처리의 핵심인 삼성생명 상장과 삼성차 부산공장 청산은 성격상 대통령 재가없인 추진하기 어려운 사안. 다시 말해 재정경제부와 금융감독위원회 청와대가 충분한 사전 협의를 거쳤다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지난달 30일 금감위가 나서 확정 발표까지 해놓고는 특혜시비와 지역반발이 일자 이를 전면 백지화했고 한술 더 떠 삼성과 채권단이 삼성차문제를 무조건 해결하라는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여기에다 부산지역 여론을 등에 업은 정치권까지 가세하면서 삼성차문제는 경쟁력 차원이 아닌 지역정서와 정치적 고려의 엉뚱한 방향으로 변질하고 있다.
▽무책임한 말바꾸기〓삼성그룹이 삼성자동차 부채처리방안을 발표하던 지난달 30일 이전에 강봉균장관 이헌재(李憲宰)금감위원장 이기호(李起浩)경제수석은 한달 동안 경제정책조정회의 수시회의를 비밀리에 8차례나 가졌다.
삼성그룹의 발표는 이같은 수시회의의 결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지난달 28일 오후 수시회의가 열린 뒤 30일 삼성측이 전격적으로 삼성차해법을 발표했고 이헌재금감위원장은 삼성차의 청산방침과 삼성생명상장 긍정검토를 화답했다.
강봉균장관도 “실마리는 풀렸다고 본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다. 삼성과 정부부처의 이같은 모습은 삼성생명상장과 삼성차부채처리 등이 관계기관이 사전에 치밀한 조정끝에 내놓았음을 반증한다.
▽특혜시비와 지역반발에 밀렸다〓문제는 삼성생명의 조기상장에 따른 특혜문제가 불거지면서 발단. 재경부 관계자는 “이헌재위원장이 경솔하게 삼성생명 조기상장을 언급하면서 문제가 복잡해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강장관은 “삼성생명 상장은 주주와 보험계약자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결정하겠다”고 신중한 자세를 폈다. 여론을 비켜나가자는 전략이었던 셈.
결국 조기상장에 대한 비난여론에 밀린 정부가 삼성생명상장을 유보하면서 삼성차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렸다.
게다가 삼성차 부산공장의 처리도 경제논리에 따른 ‘청산’에서 정치논리에 따른 ‘무조건 가동’으로 며칠새 바뀌었다.
국민회의가 부산공장의 재가동을 약속하면서 재경부 등 관계부처도 무조건 가동으로 입장이 돌아섰다.
삼성차의 부채를 몽땅 삼성에 떠 넘기려는 발상도 금융기관과의 부채분담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 정부가 모럴해저드를 조장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헷갈리는 정책방향〓청와대 관계자는 6일 “삼성차문제와 삼성생명 상장을 연계시킨 적은 한번도 없었다”며 “삼성생명 주식을 주당 70만원으로 계산한 것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재정경제부가 5일 느닷없이 계열사간 장외거래로 삼성생명주식을 매각하고 부족한 액수를 이건희(李健熙)회장의 추가적 사재출연으로 메워야 한다고 강압적인 방침을 밝힌 배경도 석연치 않다. 우선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규제하는 정부의 정책방향과도 정면으로 상충하고 뭔가 다른 속셈이 있을 것으로 재계는 관측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6일 “삼성생명 상장여부가 불투명하면 삼성생명의 경영권을 모두 넘기는 방안도 있다”며 “미국 투자회사가 삼성생명의 경영권을 70억∼80억달러로 평가했다”고 여운을 남겼다.
〈임규진기자〉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