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자산매각 잇따라 철회…구조조정 『주춤』

  • 입력 1999년 7월 16일 19시 05분


경기가 살아나면서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눈에 띄게 주춤해지고 있다.

IMF사태 이후 자금난에 쫓겨 자산이나 사업매각을 추진하던 기업들이 내놓았던 매물을 도로 거둬들이는가 하면 오히려 기업 매수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이번 기회에 비주력기업 또는 부실기업을 정리한다는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물건너 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매수의뢰가 매도의뢰 앞질러〓16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구조조정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업인수합병(M&A) 중개업무를 시작한 후 지금까지 517건의 매도의뢰가 접수됐으나 최근 경기가 좋아지자 그중 100여건이 매도의사를 철회했다.

또 지난해에는 매도의뢰가 492건으로 매수의뢰(207건)의 2.4배에 달해 매물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올들어 매수의뢰(37건)가 매도의뢰(25건)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코아M&A 등 M&A중개업계에서도 지난해말부터 기업들이 매물을 거둬들여 매수의뢰가 매도의뢰의 1.5∼2배에 이르고 있다.

코아M&A 관계자는 “지난해 기업들이 자금난에 쫓겨 팔만한 것은 모두 내놓았지만 최근 경제여건이 나아지자 버티면 된다는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며 “회수하지 않고 남아있는 매물도 가격을 크게 올려 매각성사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기업들 ‘이젠 확장으로’〓기업의 매물이 줄어든 것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살아나고 있어 굳이 사업을 정리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

또 금리가 안정되고 주식시장이 활황세로 돌아서면서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이 쉬워져 자금난이 완화된 것도 기업들의 구조조정 의지를 약화시키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기업들은 추진중인 구조조정을 중단하고 오히려 인수대상을 물색하는 등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다.

5대그룹에 속하는 A그룹은 지난해 그룹내 유통사업을 정리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으나 최근 소비가 되살아나자 유통사업을 지속하기로 했다.

중견그룹 B사의 경우는 지난해 자회사 8개중 5개를 매각하는 등 파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 왔으나 최근 현금흐름이 좋아지자 다시 사업을 다각화하겠다며 M&A중개업체에 매수의뢰를 내놓은 상태.

지난해 극심한 자금난으로 회사를 내놓았던 전자부품 중소기업 C사는 올해초 한 업체에 50억원 내외에 매각하기로 하고 자산실사까지 끝냈으나 지난달 갑자기 매물을 회수했다. 이 업체는 최근 전자부품 수요가 크게 늘자 오히려 물량이 모자란다며 다른 부품업체 매입을 추진중이다.

▽사업구조조정 물건너 갔나〓대한상의 구조조정센터에 접수된 사례의 매수사유를 보면 업종다각화가 대부분.

지난해 구조조정 과정에서 상당한 현금을 확보한 기업들이 기존 주력사업에 추가로 투자하기 보다는 새로운 영역의 사업을 찾고 있다는 얘기다.

대한상의 구조조정센터 백중기실장은 “경기가 되살아나 기업매물이 제값을 받게 된 것은 다행이지만 자칫 주력사업 중심의 사업개편 노력이 사라지고 문어발식 확장으로 치달을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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