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초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서는 대우 계열사가 발행한 것으로 알려진 30억원대의 융통어음이 화제가 됐다.
급전조달 목적의 대기업 융통어음은 시중 자금난이 극심했던 시절엔 사채시장으로 모여들곤 했지만 돈 사정이 넉넉해진 올들어서는 자취를 감춘 상태였기 때문.
한 사채업자는 “명색이 재벌기업인데 돈에 오죽 쪼들렸으면 융통어음을 돌렸을까 싶어 이상하게 생각했다”며 “이때부터 대우 어음 인수를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됐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의 자금 관계자는 “대우가 올 4월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기 직전에 이미 대우에 대한 금융기관들의 여신 회수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삼성자동차와 대우전자의 빅딜이 사실상 무산된 6월 하순에는 시중은행도 이 대열에 가담해 가뜩이나 어려운 대우의 자금줄을 더욱 조였다.
대우의 주채권은행인 제일은행 류시열(柳時烈)행장은 “7월 들어서는 일부 계열사들이 만기 3일짜리 기업어음(CP)으로 연명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됐다”고 말했다. 하루에 막아야 할 금액이 평균 수천억원대였고 자금수요가 집중된 월말에는 조 단위로 늘어나 그룹 전체와 제일은행에 비상이 걸리기도 했다. 제일은행 이호근(李好根)상무는 “대우는 빅딜설로 전자제품 판매가 큰 타격을 받아 돈줄이 거의 끊긴 상태였다”고 진단했다.
금융계에서는 “6조∼7조원이 만기 10일 이내의 초단기 악성부채인 상황에서 대우가 지금까지 버텨온 것만도 기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작년말 현재 대우그룹의 총부채는 59조8728억원. 그중 차입금은 총 46조1533억원이며 이 가운데 52.2%인 24조938억원이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차입금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대우그룹 4개 주력기업의 단기차입금이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최고 8배 이상 불어났다는 점. 대우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하는 ㈜대우의 경우 96년말 1조2733억원이던 단기차입금이 작년말에는 10조4584억원으로 무려 8배나 급증했다. 또 대우자동차는 1조2577억원에서 5조3185억원으로, 대우중공업은 1조2011억원에서 3조8414억원으로, 대우전자는 7500억원에서 1조8252억원으로 각각 늘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