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전경련 회장으로 공식 취임한 김회장의 임기는 2001년 2월까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으로부터 ‘열심히 뛰는 기업인’이란 평가를 받아온 김회장이 전경련 수장으로 추대됐을 때 재계 안팎에서는 그가 적어도 2,3차례는 연임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우 유동성위기가 수면 위로 부상한 이후 채권은행이나 정부가 공공연하게 ‘위기를 극복한 뒤엔 경영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압박하고 있어 김회장은 전경련 임기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경련 고위관계자들은 “김회장이 사퇴의사를 밝히더라도 극구 만류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김회장 체제가 내년까지 이어질 지에 대해선 스스로 회의적이다.
전경련은 조사부 등 다양한 스태프조직과 이사회 고문단 등 의결자문기구 등을 두고 있지만 사실상 회장단회의를 정점으로 운영돼왔다. 재벌그룹 오너들의 막강한 카리스마와 자금력이 전경련에 힘을 실어줬던 셈. 전경련 관계자는 “북한비료지원 같은 거액의 자금이 필요한 재계 현안의 경우 5대그룹 총수의 합의가 없다면 일처리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따라서 김회장의 도중하차가 기정사실화되면 전경련 지휘부의 공백은 피하기 어렵다. 더욱이 정부가 재벌개혁의 초점을 기업지배구조 개혁에 맞추고 공세를 강화하고 있어 오너중심의 회장단 운영방식까지 도마에 오를 가능성이 높아졌다.
대우를 제외한 4대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이 25일 ‘전경련 중심의 대우 지원’을 결의했지만 전경련은 26일까지도 구체적인 지원방안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우와 전경련간 ‘연결고리’도 이상징후를 나타내고 있다. 손병두(孫炳斗)부회장이 이날 오후 제주도 세미나를 끝내고 상경, 대책마련에 나섰지만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금융시장 불안을 감안할 때 ‘답답한 행보’라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전경련측은 후임회장에 대한 논란을 극력 회피하고 있지만 재계에서는 이미 ‘재벌개혁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전문경영인에게도 회장직을 개방할 때가 왔다’는 주장이 많다. 그러나 ‘오너들의 회장단회의 기피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이에 부정적인 입장도 만만치 않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