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포커스]샐러리맨 주식열풍 (下)

  • 입력 1999년 8월 3일 19시 27분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이 7월말 주식투자를 하는 서울지역 회사원 336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당수 응답자들이 주식투자를 ‘절대로 손해보지 않는 게임’으로 믿고 있었다.

응답자의 35%가 원금의 50% 이상 수익률을 기대했다. 여유자금 외에 자산의 대부분 또는 빚을 내서라도 주식에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많았다. 당연히 투자패턴도 공격적이었다. 투기성향을 보인 사람도 있었다.

주식은 수시로 가격이 변하기 때문에 자칫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위험자산’이라는 경제상식은 까맣게 잊은 듯하다.

이런 믿음은 한자릿수의 저금리와 정부의 일관된 증시부양책에 따라 종합주가지수가 올초 400선에서 4개월만에 1000선으로 급등하면서 부풀려진 것으로 보인다.

주식에 대한 과도한 기대와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가 커지면서 초조 불안 소화불량 불면증 등의 강박증상을 경험한 투자자도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투자에 대한 지나친 낙관주의와 비합리적인 투자행태, 그 사회적 심리적 배경을 알아본다.》

나친 낙관주의설문 응답자 336명중 20.2%(68명)가 50∼100%의 수익률을 기대했다. ‘더블을 치겠다’(100%이상)는 사람도 14.3%(48명)였다. 3명중 1명꼴로 최소한 시중금리의 5배 이상을 벌겠다는 셈.

시중금리∼20%의 수익률에 만족하겠다는 투자자는 17.0%(57명)에 불과했다.

반면 주식은 은행예금과 달리 원금을 잃을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염두에 둔 투자자는 별로 없었다.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고 답한 사람이 22.0%(74명), 원금의 10%까지만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응답자는 42.0%(141명)였다. 30% 이상의 손실을 각오한 투자자는 6.3%(21명)였다.

동원증권 박래신(朴來申)돈화동지점장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수십년간(이자율기준으로) 연 12∼15%를 적정한 수익률로 받아들여왔으나 최근 ‘단기간에 원금의 몇 배를 벌었다’는 성공담이 돌면서 기대수준이 한껏 높아졌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투자자들의 높은 기대가 현실적으로 충족되기 어렵다고 본다.

한화증권이 4∼6월 일반인과 대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실전 투자대회에서 참가자 3642명중 2642명(72.5%)이 손해를 봤다. 참가자들의 평균수익률은 0%. 대회기간중 지수상승률은 22.3%였다.

또 6월초부터 현대증권 주최로 대학생 169명이 벌이고 있는 모의투자게임을 중간집계한 결과 7월27일 현재 원금을 까먹은 사람이 88명(52.1%)이나 됐다. 참가자의 평균수익률은 2.8%로 같은 기간 지수상승률 23.2%에 훨씬 못미쳤다.비합리적인 투자심리기대수익률을 원금의 50% 이상으로 설정한 회사원 116명중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31명(26.7%)이었던 반면 △‘30% 이상 손해를 감수할 수 있다’는 회사원은 11명(9.5%)에 불과했다.

주식투자에 대한 기본태도를 묻는 질문에는 31.5%(106명)가 ‘손해볼 가능성이 크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이렇게 응답한 사람 중에서도 △25명(23.6%)이 ‘절대로 손해볼 수 없다’고 대답했고 △17명(16.0%)이 100%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했다.

제일투신운용 주식운용팀 이용갑(李鏞甲)차장은 “주식투자의 일반적인 위험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막상 자신의 투자문제에 관한 한 욕심을 부린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개인투자자들은 대개 수익만 생각하고 위험은 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높은 수익을 바란다면 그만큼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 주식투자의 기본이다”고 말했다.과도한 투자와 부작용응답자 4명중 1명꼴로 ‘보유자금 대부분을 주식투자에 쓰겠다’(20.8%)거나 ‘돈을 빌려서라도 주식에 투자하겠다’(4.8%)고 대답했다. 여유자금만으로 주식투자를 하겠다는 사람은 39.9%였다.

개인투자자들이 주식투자에 과도한 비중의 자금을 쏟아붓는 것은 주식 이외에 마땅한 투자처가 없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1년전만 해도 20%에 달했던 금리가 한 자릿수로 떨어지고 주가가 1000선으로 급등한 상황에서 예금이나 채권투자 등은 투자매력을 잃었다는 것.

삼성경제연구소 김경원(金京源)수석연구원은 “정부가 구조조정과 경기부양이라는 두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으로 주식시장 부양에 나선 것이 결정적으로 주식투자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주식러시 속에서 작년까지만 해도 일부 전문가들에 한정됐던 ‘데이 트레이딩(보유주식을 판 당일에 다른 주식을 사는 것)’을 하는 투자자도 크게 늘었다. 설문조사에서 ‘데이 트레이더’는 11.9%(40명)로 나타났다. 보유주식을 판 후 다른 주식을 사는데 걸리는 시간은 △1주일 이상이 32.1%(108명) △4일∼1주일 미만 27.7%(93명) △2∼3일 27.1%(91명)였다.

개인투자자의 실제 수익률이 높지 않은 현실에서 과도하고 조급한 투자행태는 스트레스와 신체질환으로 연결되고 있다.

설문조사 응답자 336명중 절반 가량(146명)이 주식투자 때문에 불안 초조 소화불량 불면증 노이로제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 정도언(鄭道彦·신경정신과)교수는 “수익률에 대한 높은 기대와 이를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현실의 괴리가 클수록 투자자들이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심하면 노이로제 등 강박증세를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윤종구 이철용 부형권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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