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금융계 빅뱅 1]日은행 "美에 안당한다" '혁명적 결단'

  • 입력 1999년 8월 20일 21시 43분


<<세계 금융계에 대재편(빅뱅)의 태풍이 불고 있다. 합병이나 사업통합으로 메가뱅크(거대은행)를 만들려는 움직임이다. 세계화와 디지털경제 시대에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은행은 살아남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금융기관 재편의 파도가 일본과 유럽에도 밀어닥쳐 세계 금융계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 세계 금융계 대재편의 실태와 전망을 3회 시리즈로 점검한다.>>

다이이치칸교(第一勸業)은행 등 일본의 3개 대형은행이 전면적인 사업통합방침을 밝힘으로써 일본의 금융재편이 결정적인 전환기를 맞았다. 금융전문가들은 “일본 금융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일본금융계의 상식을 뛰어넘었다. 그동안 일본에서도 일부 금융기관간 합병이나 제휴가 있었다. 그러나 대형 은행은 가급적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업무제휴를 하는 형태를 선호했다. 그런데 자부심이 강한 3개 대형은행이 사업통합이라는 획기적인 결단을 내린 것이다.

이렇게 만든 최대요인은 “이대로 가다가는 미국계 은행과의 경쟁에서 다 망한다”는 위기감이었다. 90년대 초 거품경기 붕괴 후 막대한 부실채권을 떠안게 된 일본은행들은 단독으로는 외국은행들과 경쟁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통감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3월에 재무구조개선을 위해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 일단 ‘발등의 불’은 껐지만 잠재적 불안요인은 여전하다. 독자적인 구조조정과 경영재편만으로는 세계적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요조건은 될지 몰라도 충분조건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자본력 경쟁’으로 불리는 세계 금융재편의 흐름이 통합을 위한 외압(外壓)으로 작용했다. 일본 은행들이 부실채권처리에 골몰하는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잇따라 합병을 통한 거대은행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미국 뱅커스 트러스트 매수, 스위스 3대 은행인 UBS와 SBC의 합병, 미국 씨티은행과 보험회사인 트래블러스그룹의 합병뉴스가 전해졌다. 과거 자산규모로 세계 정상급이었던 일본은행들은 금융재편의 과정에서 낙오해 중위권으로 전락했다.

디지털과 금융의 만남은 은행들의 자본력경쟁을 더욱 격화시켰다. 컴퓨터를 이용한 정보기술(IT)이 금융의 사활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 금융기관이 단독으로 시스템투자를 계속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 금융전문가는 “IT투자비용을 엔화로 환산하면 미국은행은 연간 평균 1600억엔인데 일본은행은 500억엔인 상황에서 상대가 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3개은행이 통합하면 그 ‘규모의 이익’은 독보적이 된다. 141조엔(약 1410조원)이라는 총자산은 세계 은행 중 단연 1위다. 다이이치칸교은행과 후지(富士)은행은 현재도 각각 1000만계좌 이상의 고객이 있고 닛폰코교(日本興業)은행은 기업거래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다.

이번 통합에서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은 합병이 아니라 금융지주회사 설립을 통한 사업통합이라는 점이다. 합병의 형태를 취하면 금융분야별로 효과적인 경영이 어렵고 인사를 둘러싼 마찰도 심해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번 통합발표는 일본안팎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낳을 전망이다. 통합에서 제외된 도쿄미쓰비시 스미토모 사쿠라 아사히은행 등 일본 은행들은 물론 구미(歐美)은행의 ‘짝짓기’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도쿄〓권순활특파원〉shkw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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