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정재계간담회에서 정부가 내놓은 재벌개혁 정책 중 재계가 가장 부담을 느끼는 부분은 출자총액제한제. 총수의 경영권 강화와 부채비율 감축에 유용한 순환출자가 차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재벌들은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한편 ‘퇴로’ 찾기에 나섰다.
▽적은 투자로 큰 위력〓공정거래위에 따르면 30대 그룹 총수와 친인척 등 특수관계인의 지분은 지난해말 7.9%에서 올해 6월 5.4%로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지배력은 오히려 강화됐다. 계열사 지분이 36.6%에서 45.2%로 높아졌기 때문.
여기에 동원된 수단이 바로 계열사간의 ‘거미줄’ 같은 순환출자망.
현대의 경우 정주영(鄭周永)명예회장 일가가 갖고 있는 현대자동차 지분은 모두 합해봐야 6%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과 현대건설 인천제철 등의 ‘지원출자’로 총수 일가는 절대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다. 또 현대중공업에는 현대건설이, 현대건설에는 현대정공이 출자하는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
삼성도 마찬가지. 61개 계열사 가운데 총수의 개인 주식이 있는 곳은 불과 9개사. 예컨대 이건희(李健熙)회장 일가가 갖고 있는 삼성물산과 삼성전자의 지분은 1.62%와 3.62%에 불과하다. 삼성전관과 삼성전기 삼성중공업 등에는 단 한주의 지분도 없다. 그러나 이건희→삼성전자→삼성중공업, 삼성전자→삼성전기, 삼성전자→삼성전관→삼성물산 식으로 꼬리를 물며 계열사를 장악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관계자조차 “재벌들의 순환출자를 그림으로 그리다가 하도 복잡해서 포기할 정도”라고 털어놓았다.
정부는 이 때문에 선단식 경영의 핵심고리가 되는 순환출자를 막기 위해 총액출자제한제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재벌들 “퇴로를 열어달라”〓재벌들은 정부의 강경태도에 당혹스러워 하면서도 시행시기를 2001년 4월로 미뤄놓은 데 안도하면서 대책을 준비하겠다는 자세다.
현대는 소그룹별 분리 속도를 더욱 빨리할 계획. 이미 독립그룹화 계획을 밝힌 자동차부문 분리를 더욱 앞당기고 이어 전자 중공업의 분리를 서두를 예정이다. 이같은 소그룹화와 계열사간 지분 정리를 동시에 진행, ‘두마리 토끼’를 한번에 잡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현대는 유상증자를 통한 재무구조 개선 작업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계열사간 유상증자 참여를 통한 ‘주가부양’효과 등을 기대하기 힘들어졌기 때문.
삼성은 제2금융권 지배 제한과 맞물려 예상되는 경영권 간섭 가능성에 대한 대책을 마련중이다.
재계는 한편으로는 ‘퇴로’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지주회사 설립요건 완화를 강도 높게 요구하고 있다. 이미 정부 당국자들 입에서 ‘지주회사 부채비율 상한선 완화’를 시사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