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장 발언 파장]"정부정책 헷갈린다" 재계 긴장

  • 입력 1999년 9월 2일 19시 25분


안정남(安正男)국세청장이 2일 기자회견을 통해 하반기 중 사회지도층과 재벌그룹에 대한 강도높은 세무조사를 시사한 것은 ‘성역없는 세무행정’의 선언으로 해석된다.

이날 회견은 매우 이례적이었다. 첫째는 국가 핵심권력의 한 축인 국세청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는 점. 안청장은 6월말 한진 보광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사실이 밝혀진 직후 한동안 출입기자단의 면담요청을 뿌리쳐왔었다.

둘째는 안청장 발언의 무게다. 그는 정당한 세금납부가 없는 부의 사전상속 변칙증여에 대해서는 재벌이든 누구든 조사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8·15경축사를 통해 ‘세금없는 부의 이전을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듣고 이제 국세청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을 달았다. 상당한 무게가 실린 발언이라는 분석.

셋째는 안청장이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에 대한 조사가능성을 직접 언급한 점이다. 국세청은 개별 그룹 또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이건희회장은 지난해 하반기 삼성생명 주식을 대거 매집, 10%에 불과하던 지분을 26%로 늘렸다. 지분확대 경위를 놓고 감춰졌던 상속지분의 실명전환 등의 가능성이 제기되어 왔다.

특히 이회장이 계열사 자금을 동원해 주식을 매집했을 경우 이회장 개인은 증여세를 탈루한 것이고 자금을 빌려준 법인은 법인세를 탈루한 결과가 된다. 이런 의혹에 대한 세무조사 가능성을 국세청장이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므로 삼성내부에서도 예사롭지 않은 상황전개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편 국세청이 한진그룹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을 연장한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안청장은 “마무리조사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만 말했으나 국세청이 이미 상당부분 증거를 포착해놓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안청장이 사회지도층 세무검증의 본보기로 밝힌 ‘90평 이상의 초대형 아파트 매입자 1200명에 대한 자금출처조사’ 방침에 대해선 일관성 없는 정책이란 비판도 없지 않다.

가라앉은 건축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초대형 아파트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며 수요를 조장할 때는 언제고 지금와서 서민층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부유층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조사를 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사회불안을 조장하는 편의적인 발상이란 소리도 일각에선 나온다.

〈신치영기자〉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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