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백화점은 직원들의 일손이 달릴 정도로 추석특수(特需)를 누리고 있으나 서울 중구 남대문시장과 동대문구 동대문시장 등 재래시장은 예년에 비해 손님이 훨씬 적어 한산한 분위기다.
재래시장 상인들은 “국제통화기금(IMF)한파가 몰아쳤던 지난해 추석 때보다도 오히려 경기가 나쁘다”며 한숨을 쉬고 있다.
★남대문시장
16일 오전 1시경. 예년에는 이맘 때면 지방에서 올라온 소매상들로 북새통을 이뤘으나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시장 골목이 거의 텅비어 정적마저 감돌았다.
포키아동복상가의 도매상 구본흥(具本興·34)씨는 “IMF 불황으로 고전했던 지난해 추석대목 보다 매상이 오히려 30% 가량 줄었다”며 “가게문을 연 지 4시간이 지났는데 아직 개시도 못했다”고 말했다.
의류 도매상 홍모씨(45·여)는 “일부 눈에 띄는 디자인을 내놓은 상점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난해에 비해 매상이 뚝 떨어졌다”고 말했다.
불을 환히 밝힌 상가 주변 음식점과 포장마차도 손님이 없기는 마찬가지. 그리쉼쇼핑센터 앞의 포장마차 10여곳과 남대문로3가 새로나백화점 옆 골목에 열렬로 늘어선 음식점 20여곳은 한두곳을 제외하곤 대부분 비어 있었다.
★동대문시장
평화상가 흥인상가 신평화상가 등 숙녀복과 내의를 전문으로 파는 이곳의 사정은 더 나빴다.
16일 오전 2시경. 일부 상점 주인들은 신문을 뒤적이며 무료함을 달랬고 일부는 아예 잠을 청하기도 했다.
도매상에 의류를 납품하는 김진업(金鎭業·30)씨는 “이번 주에 2000벌은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창고를 가득 채워놓았는데 아직 500벌도 팔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지방의 소매업자들이 관광버스를 대절해 의류를 수백벌씩 떼갔으나 이날은 단 한대의 관광버스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 안산시 시화지구에서 의류 소매점을 운영하는 김명자(金明子·36)씨는 “추석때라 뭔가 다르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너무 팔리지 않아 물건을 떼가기가 겁난다”라고 푸념했다.
동대문시장 상가번영회의 한 관계자는 “추석을 코앞에 두고도 재래시장의 경기가 풀리지 않는 것은 전국적으로 서민들의 구매력이 아직도 IMF한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형 백화점
16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백화점 지하 매장. 수십명의 직원과 아르바이트생들이 전화주문을 받느라 눈코뜰새 없었다.
이 백화점 식품잡화매장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1주일 전과 비교해 매출이 35% 정도 증가했다”고 말했다. 14,15일 이틀간 이 매장에서 팔린 선물세트 매출액만도 250억원에 달했다.
롯데백화점 관계자는 “당초 추석기간의 상품권 매출액을 550억원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600억원 이상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본점의 경우도 14,15일 이틀간 매출액이 27억3000만원으로 지난해 추석 1주일 전의 이틀간 매출액(22억2000만원)에 비해 약 23% 늘었다.
10,20대 초반의 젊은 층을 주 고객으로 하는 중구 을지로6가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 대형 쇼핑매장에도 구매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두산타워측은 “평소 하루 10만∼13만명이던 구매자가 최근 들어 15만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현대백화점 부설 유통연구소 김인호(金仁鎬·37)소장은 예년과 달리 대형 백화점이 추석특수를 누리고 있는데 대해 “지난해 IMF를 겪으면서 주로 재래시장을 찾던 중산층이 붕괴된데 따른 것같다”고 분석했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