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대안도 없이 단일한 상대와 협상을 벌이면서 시한까지 못박고 있어 국내 업체의 협상력만 떨어뜨린 대표적인 케이스라는 지적.
당초 9월말로 예정된 삼성종합화학과 현대석유화학의 유화통합법인 출범은 ‘손해볼 것 없는’ 미쓰이측이 수출권 보장과 출자전환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기약없이 겉돌고 있다. GM으로부터 외자유치를 추진중인 대우는 그룹 전체가 벼랑끝에 몰리면서 협상력이 거의 실종됐다.
▽승부가 뻔한 게임〓제일은행이 5000억원이라는 헐값에 매각됐다는 소식을 들은 유화업계 관계자는 “‘매달리기’식 외자유치 협상이 빚은 필연적 결과”라면서 “유화 빅딜의 경우도 협상 대상이 일찌감치 미쓰이 하나로 정해져 있어 흥정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했다”고 지적했다.
빅딜 대상인 삼성 현대의 두 유화업체는 기업가치 평가를 위해 영업과 연구개발 등에 대한 내부자료를 미쓰이측에 이미 모두 공개한 상태. 강력한 경쟁상대였던 삼성과 현대의 내부 기밀을 샅샅이 파악한 미쓰이측에선 협상이 결렬되더라도 아쉬울 게 없는 입장이다.
대우―GM 협상도 채권단과 정부측에서 대우의 구조조정 시한을 6개월로 못박으면서 대우측의 입지만 좁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김우중(金宇中)회장이 직접 뛰면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구체적인 성과는 전혀 나오지 않고 있다. 대우차도 실사 과정에서 영업 비밀이 GM에 모두 노출돼 외자유치가 무산될 경우 적지 않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대안 마련해야”〓유화업계에선 제3의 외자유치선 모색이나 국내업계가 공동출자로 대산단지를 인수하는 방안 등 지금이라도 미쓰이측에 ‘우리에게 다른 카드도 있다’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그러나 “혼인 상대가 결정됐는데 결혼식을 앞두고 사소한 결점 때문에 파혼 얘기를 꺼낼 수는 없다”며 어떻게든 미쓰이와의 협상을 매듭짓도록 업계에 종용하고 있다.
산자부 고위관계자는 “당초 9월말까지 구체적인 계약을 맺기로 되어 있지만 다소 미뤄지더라도 협상을 계속 해야한다”면서 “미쓰이측이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협상을 통해 해결하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선 협상이 공전하는 동안 경쟁력은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하는 분위기. 한 관계자는 “지난해말부터 외자유치협상 상대로 미쓰이가 거론되면서 동남아 등 기존 거래선들이 ‘주인이 바뀌는 게 아니냐’며 동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