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따라 내년 7월로 예정된 채권시가평가제 시행 유보의사를 정부가 밝히는 등 정부가 잇따라 내놓은 안정대책이 11월 금융대란설로 촉발된 시장 불안심리와 금리급등세를 잡을 수 있을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시장의 반응은 “대증(對症)요법에 불과하다”는 평가와 “효과가 즉각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가 엇갈려 혼미한 상황이다.
▽금융시장안정대책 ‘봇물’〓7월25일 은행권의 투신권 무제한 유동성지원을 시작으로 18일 채권시장안정기금 조성까지 굵직한 것만 해도 4,5건에 이른다.
8월12일에는 기관투자가의 수익증권 환매제한을 풀어주는 대신 환매범위를 기간별로 대우채 편입부분의 50∼95%로 단계적으로 늘리는 방안이 발표됐다. 환매조건부채권(RP)매입, 통안증권 중도환매를 통해 투신권에 환매자금을 지원한다는 기존 정책도 재확인했다.
8월23일에는 70개 은행 증권 투신사 대표들을 모아 △수익증권 환매 △무분별한 채권매각 △수신금리 경쟁 등을 자제하는 등 7개항에 합의하도록 했다.
사흘 뒤인 26일에는 대우 12개사에 대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적용하면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이 직접 투신 및 증권사에 환매자금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실효성 적었다〓대책의 핵심은 증권 투신사에 돈을 풀어 수익증권 환매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하고 보유주식이나 채권의 무차별 투매(投賣)를 막아 금리상승과 주가하락을 방지하자는 것.
그러나 효과는 크지 않았다. 정부가 비슷한 내용의 대책을 되풀이해 내놓는 것도 이를 증명하는 셈.
투신권에 대한 은행지원은 기준금리 지원기간 등 지원조건을 둘러싸고 두 금융권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겉돌기 일쑤였다. 투신사들은 먼저 자금지원을 신청할 경우 ‘문제있는 회사’로 찍힐 것을 우려,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대우 협력업체에 대한 자금지원은 정부의 채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은행원들이 나중에 책임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하기 때문.
▽이번엔 효과 있을까〓채권시장안정기금 조성과 채권시가평가제 유보 등을 내용으로 하는 ‘9·18대책’에 대해 증권 투신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
관건은 기금 조성에 은행이 얼마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느냐다. 이번주부터 구체적인 참여대상 금융기관 선정작업이 우선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나 은행이나 보험사들이 일정한 대가없이 선뜻 돈을 내겠다고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워 초기단계부터 진통이 예상된다.
한 우량 시중은행 임원은 “최근 수신고의 90% 이상이 만기 3개월 이내 단기자금인데 최소한 6개월 이상 묶일 기금에 출연하면 만기불일치(미스매치)현상이 심화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그는 “먼저 정부가 공적자금으로 기금의 절반정도를 채워놓으면 모를까 어느 은행이나 출연을 꺼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채권시가평가제 유보도 국제통화기금(IMF)의 눈치를 보아야하는 사항이고 신종 MMF, 공사채형 사모펀드, 대우채 편입 공사채형 수익증권의 주식형 전환 등 투신 신상품 허용 등도 간접투자에 대한 투자자의 애정이 식은 상황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대책도 자칫 ‘립 서비스’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특히 금융당국은 180조원에 달하는 기존 공사채형 펀드의 환매사태 지속여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헌재(李憲宰)금융감독위원장이 시가평가 대상이 아닌 기존 펀드에 추가형 펀드를 금지하고 신규로 설정되는 펀드는 모두 시가평가를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에 기존펀드에 대한 시가평가 유보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다른 어느 대책도 무력해질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정경준기자〉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