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정주영회장 면담서 수출종목등 깊은 관심

  • 입력 1999년 10월 3일 20시 09분


11개월만의 만남이었지만 분위기는 따뜻했다. 정주영(鄭周永)현대명예회장 일행과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두번째 만남은 남측 관광객 민영미씨 억류사건의 기억이 무색할 정도로 화기애애하게 진행됐다.

다음은 현대측의 전언을 토대로 이번 만남을 재구성한 것.

서울 귀환일정을 이틀이나 미룬 정명예회장 일행이 면담을 통보받은 것은 1일 오전 10시경. 정명예회장 일행이 묵고 있는 평양 백화원초대소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측 인사가 전화를 걸어 “면담이 성사됐다”고 짤막하게 알려왔다.

김위원장은 함경남도로 ‘현지지도’를 나가 평양에 부재중이었다. 장소는 흥남 교외의 서호초대소. 주변 경치가 수려해 일명 ‘서호각’으로 불리는 김위원장의 별장이다. 오찬 일정이 잡혀있었다.

정명예회장 일행을 태우고 평양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40분쯤 뒤 흥남 선덕비행장에 도착했다.

지난해 첫 만남 때는 김위원장이 평양 백화원초대소로 정명예회장을 찾았지만 이번에는 정명예회장이 지방 초대소로 찾아갔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두 사람의 재회장소로 지방을 택한 의도는 김정일이 바쁜 일정에도 정명예회장의 면담요청을 관대하게 수용했다는 점을 과시하기 위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정명예회장 일행이 서호초대소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40분. 잠시 휴식을 취하자 오후 1시에 김위원장이 나타났다.

“방문을 환영합니다, 명예회장 선생.”

김위원장과 정명예회장이 먼저 사진을 찍고 다음으로 정몽헌(鄭夢憲)현대회장도 함께 사진촬영에 응했다. 이 사진은 다음날 노동신문과 민주조선 등 당기관지 1면에 실렸다.

김위원장과 정명예회장, 정회장외에 김용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장과 송호경 부위원장이 배석한 가운데 5자 면담이 시작됐다.

정회장이 먼저 “(온정리에)휴게소와 공연장이 건설됐습니다”라고 말하자 김용순위원장이 “교예공연(서커스)이 인기 있습니다”라고 거들었다.

“1000명이 온천을 한다는데 물은 충분합니까.”(김정일)

“충분합니다.”(김용순)

김정일은 김용순 위원장으로부터 정확한 보고를 받고 있는 듯했다.

긴장된 분위기가 다소 풀리자 정회장은 지연되고 있는 외국인 금강산 관광얘기를 꺼냈다.

김정일은 “즉시 시작하자”고 그 자리에서 결정하고 이어 서해안공단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무슨 제품을 생산해 어느 나라에 수출할 겁니까, 기간은 얼마나 걸립니까.”

김정일은 공단내 주거시설에 들어설 집의 모델하우스를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양측은 공단조성을 민족적 사업으로 빨리 추진하자고 합의했다.

화제는 농구로 이어졌다.

김정일은 “12월중으로 서울에서 농구경기를 하라”고 배석한 김용순위원장에게 지시했다. 체육교류를 정기적으로 개최하라는 지시까지 떨어졌다. 예기치 않은 선물이었다.

김정일은 이번 농구경기를 못봤지만 기술자(전문가)들로부터 보고는 받았다고 말했다.

“남자팀간 경기에서 우리가 이긴 것은 이명훈(북한의 세계 최장신 농구선수)이 소속된 팀과 연습을 많이 해 기량이 향상된 덕택이다. 12월에 남쪽에서 시합을 하면 우리팀이 텃세 때문에 고생 좀 할 것 같다”고 농담도 했다.

정명예회장이 드디어 김용순위원장 초청 얘기를 꺼냈다.

“서해안공단사업을 위해서는 김용순위원장과 아태 관계자들이 현대를 방문해 이해를 같이하는 게 필요합니다.”

김정일은 김용순위원장에게 “사업계획이 확정될 무렵에 다녀오라”고 했다.

함흥냉면이 식단에 올랐다.

김정일은 “함흥냉면은 별미니까 조금만 드시고 평양에 가서 냉면을 많이 드시지요”라고 말했다. 평양냉면은 모밀로 만들고 함흥냉면은 감자전분으로 만든다는 설명도 있었다.

뱀장어도 메뉴였다. 다만 구이가 아니라 쪄서 내왔다.

김정일은 “남쪽에서도 뱀장어를 먹습니까”라고 물었고 정명예회장은 “서산농장에서 뱀장어가 나와 많이 먹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오찬은 3시30분이 돼서야 끝났다.

정명예회장은 “만나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김정일은 “잘 가시라”고 받았다.

〈이명재·김영식기자〉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