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업체가 L&H에 지분을 매각한 것은 본격적인 음성인식기술 사업에 뛰어들면서 선진기술을 도입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 국내에서는 삼성과 LG 등이 음성인식기술을 갖고 있지만 어차피 경쟁관계이기 때문에 외국업체로 눈을 돌렸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20대에 벤처창업을 한 서주철사장(33)은 이번 지분매각으로 경영권은 계속 가지면서도 창업 7년 만에 600억원이 넘는 거액을 벌었다.
‘이제 우리의 사업 파트너는 다국적 기업.’
최근 다국적기업의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는 전략적 제휴로 글로벌경영에 나서는 유망 벤처기업이 늘고 있다. 제휴방법도 지분매각,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부품공급, 완제품 직수출, 기술제휴, 합작 등 사업특성에 따라 다양하다.
▽다국적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붐〓범일정보통신 외에도 다국적기업의 기술과 자본을 유치하는 벤처기업이 크게 늘고 있다.
호출기 전문제조 벤처기업 어필이 모토로라에 지분을 매각한 것은 대표적인 전략적 제휴 성공사례. 가산전자도 미국의 리눅스업체인 레드헷과 제휴해 이달 중 레드헷코리아를 설립할 예정. 가산은 이번 제휴를 통해 레드헷의 공개운영체계(OS)와 전자상거래 솔루션 등을 국내에서 판매하고 제품 한글화 및 출판사업에서도 공동마케팅을 전개한다.
벤처기업 AES도 IBM의 컴퓨터 하드웨어 솔루션을 접목해 컴퓨터 공급에 나서고 있으며 이지정보시스템도 IBM의 컴퓨터시스템인 AS400을 위한 독자적인 솔루션을 개발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공동마케팅을 실시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들 외에도 올해 국내 벤처기업이 다국적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성사시킨 건수가 100건을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왜 다국적 기업인가〓벤처기업 관계자들은 “국내 대기업은 시장에서 경쟁상태에 있어 제휴파트너로서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털어놓는다. 기술료도 제대로 주지 않으려 하고 회사를 헐값에 차지하려는 대기업도 있다는 게 이들의 주장.
그래서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선진 경영시스템과 해외판로가 없어 고민하는 대부분의 벤처기업가들에게 다국적기업은 최적의 사업파트너로 꼽힌다.
특히 신기술로 창업한 뒤 곧바로 기술과 함께 회사를 팔려는 ‘힛트앤드런’식 운영을 하는 벤처기업가에게는 다국적기업이 구세주처럼 느껴진다. 다국적 기업도 ‘몸값’이 비싼 대기업 대신 전문성과 아이디어가 좋은 중소 벤처기업을 사업 파트너로 정해 국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유용호사무국장은 “벤처기업이 다국적기업과 제휴를 할 경우 해외시장 개척과 자본 유치 등에 효과가 커 앞으로 더욱 늘것”이라고 말했다.
〈박정훈기자〉sunshad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