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로 가입이 끝난 개발신탁의 특징은 운용실적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되는 다른 신탁상품과는 달리 가입 당시의 확정금리를 약속한다는 점.
은행들이 실적배당형 신탁상품의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대우채 등 부실자산을 대거 개발신탁으로 떠넘기면서 자산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다.
은행들은 이런 식으로 쌓인 개발신탁의 부실을 은행 고유계정으로 옮길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은행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것을 걱정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왜 불안한가〓작년말 40조원을 넘었던 개발신탁 잔액은 올들어 신규가입이 중단되면서 매월 2조원씩 감소해 3일 현재 21조6636억원으로 줄었다.
개발신탁이 은행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신탁상품의 각종 부실을 도맡아 떠안으면서부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연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 신종적립신탁 등을 통해 시중자금을 끌어들인 은행들은 최근 저금리로 인해 배당률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워크아웃기업 채권 등 각종 부실자산을 개발신탁으로 이관하는 편법을 썼다. 대우사태가 발생한 뒤에는 대우관련 회사채가 개발신탁으로 옮겨졌다.
고객들의 신탁상품 이탈을 막기 위해 만기까지 시간여유가 있고 가입자들이 반발할 소지도 없는 개발신탁을 은행내 ‘배드뱅크’로 삼은 셈.
한 시중은행 신탁부 관계자는 “개발신탁 자산중 20∼30%가 부실자산”이라며 “신탁 운용실적이 저조한 일부 은행은 손실률이 최고 50%를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발신탁 가입자는 확정금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자산부실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 신탁부장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금융감독원에 “신탁계정의 부실자산을 은행계정으로 이관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은행 부실을 일반 예금주와 주주가 뒤집어쓴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기업도 비상〓개발신탁의 가입기간은 통상 2년이어서 대부분의 만기가 내년말안에 돌아온다.
문제는 개발신탁 가입액중 60∼70%가 차주와 예금주가 다른 ‘꺾기’ 형태로 예치됐다는 점. 예컨대 A기업이 B은행에서 돈을 빌릴때 은행 개발신탁에 자신 명의로 가입한 뒤 이 증서를 전주 C에게 팔고 실제 대출은 B 은행에서 받는 방식으로 자금거래가 이뤄졌다.
결국 ‘꺾기’ 조건으로 돈을 빌린 기업들은 내년말까지 줄잡아 12조∼14조원을 갚아야 하는 실정. 은행 관계자들은 “시중 자금사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기업들이 10조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과정에서 자금경색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