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개발신탁 '적색경보'…"운용자산 20~30% 부실"

  • 입력 1999년 11월 8일 23시 18분


은행 개발신탁의 부실이 대우사태에 이어 금융권을 또한번 뒤흔들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주목받고 있다.

작년말로 가입이 끝난 개발신탁의 특징은 운용실적에 따라 이자율이 결정되는 다른 신탁상품과는 달리 가입 당시의 확정금리를 약속한다는 점.

은행들이 실적배당형 신탁상품의 수익률을 유지하기 위해 대우채 등 부실자산을 대거 개발신탁으로 떠넘기면서 자산건전성이 급속도로 악화된 것이다.

은행들은 이런 식으로 쌓인 개발신탁의 부실을 은행 고유계정으로 옮길 수 있게 허용해달라고 금융당국에 요청하고 있지만 금융감독원은 은행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것을 걱정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왜 불안한가〓작년말 40조원을 넘었던 개발신탁 잔액은 올들어 신규가입이 중단되면서 매월 2조원씩 감소해 3일 현재 21조6636억원으로 줄었다.

개발신탁이 은행의 ‘뜨거운 감자’가 된 것은 신탁상품의 각종 부실을 도맡아 떠안으면서부터. 외환위기 이후 최고 연 20%대의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 신종적립신탁 등을 통해 시중자금을 끌어들인 은행들은 최근 저금리로 인해 배당률을 맞추기 어려워지자 워크아웃기업 채권 등 각종 부실자산을 개발신탁으로 이관하는 편법을 썼다. 대우사태가 발생한 뒤에는 대우관련 회사채가 개발신탁으로 옮겨졌다.

고객들의 신탁상품 이탈을 막기 위해 만기까지 시간여유가 있고 가입자들이 반발할 소지도 없는 개발신탁을 은행내 ‘배드뱅크’로 삼은 셈.

한 시중은행 신탁부 관계자는 “개발신탁 자산중 20∼30%가 부실자산”이라며 “신탁 운용실적이 저조한 일부 은행은 손실률이 최고 50%를 웃돌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개발신탁 가입자는 확정금리가 보장되기 때문에 자산부실에 따른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 신탁부장들은 최근 모임을 갖고 금융감독원에 “신탁계정의 부실자산을 은행계정으로 이관하는 것을 허용해달라”고 건의했지만 이 요구가 받아들여지면 은행 부실을 일반 예금주와 주주가 뒤집어쓴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은 난색을 표시하고 있다.

▽기업도 비상〓개발신탁의 가입기간은 통상 2년이어서 대부분의 만기가 내년말안에 돌아온다.

문제는 개발신탁 가입액중 60∼70%가 차주와 예금주가 다른 ‘꺾기’ 형태로 예치됐다는 점. 예컨대 A기업이 B은행에서 돈을 빌릴때 은행 개발신탁에 자신 명의로 가입한 뒤 이 증서를 전주 C에게 팔고 실제 대출은 B 은행에서 받는 방식으로 자금거래가 이뤄졌다.

결국 ‘꺾기’ 조건으로 돈을 빌린 기업들은 내년말까지 줄잡아 12조∼14조원을 갚아야 하는 실정. 은행 관계자들은 “시중 자금사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기업들이 10조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상환하는 과정에서 자금경색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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