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자금차입 "짧게 싸게"…'잠깐 조달' 새풍속도

  • 입력 1999년 11월 17일 19시 17분


LG상사가 16일 발행한 만기 7일의 기업어음(CP) 300여억원 어치는 금융기관들이 앞다퉈 인수에 나서면서 연 5.45%의 낮은 금리로 곧바로 소화됐다.

신한증권 단기금융부 정원혁대리는 “LG상사처럼 신용도가 높은 기업의 CP는 물량이 흔치 않아 일단 시장에 나오면 당일 모두 팔린다”며 “장단기 금리차가 확대되면서 우량기업일수록 이자가 싼 초단기로 자금을 조달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대우사태 이후 자금거래 패턴이 업체의 신용도에 따라 양극화되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신용등급(CP 기준)이 A1, A2인 우량기업은 만기 1주일∼보름의 초단기로 자금을 끌어쓰는 반면 신용도가 처지는 중견기업은 다소 높은 이자를 물더라도 3개월 이상의 중장기 자금을 선호한다. 과거 장기차입을 거절당한 기업들이 마지못해 단기자금에 의존했던 것과는 정반대 상황이다.

▽왜 단기자금을 쓰나〓가장 큰 이유는 만기가 짧을수록 금리가 싸기 때문. 삼성물산 삼성중공업 LG화학 제일제당 롯데쇼핑 등 유동성에 자신 있는 기업들은 신규차입을 가급적 자제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에만 만기 1개월 미만의 자금을 쓰고 있다.

이들 우량기업 CP의 금리는 7일 만기가 연 5.5% 안팎이고 15일은 연 5.6∼5.7%, 30일은 연 5.8∼5.9%선. 연 7%대 초반인 3개월물보다 1.5∼2%포인트 가량 낮다.

금융기관들도 최근 신규예치금이 머니마켓펀드(MMF) 시장금리부 수시입출식예금(MMDA) 등 단기상품 위주로 몰리는 점을 감안해 단기물 매입에 적극적인 자세. 자금의 수요처인 기업과 공급원인 금융기관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자금조달 패턴이 초단기화되고 있는 셈이다. 금리추이가 불안정한 것도 자금단기화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은 여전〓시중은행 신탁부 관계자는 “대우사태를 겪으면서 기업의 신용상태를 따지는 경향이 더욱 심해져 풍부한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비우량 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고 말했다. 투기등급인 B+ 이하 기업의 CP는 일부 투신사가 3개월물을 연 11%대의 조건으로 인수한 것 외에는 거의 팔리지 않는 실정. 투자적격중 하위등급의 기업들은 안정적인 자금운용을 위해 3개월 이상의 중장기 발행을 희망하지만 금융기관들이 만기를 단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업의 단기자금 선호는 그만큼 장기자금을 필요로 하는 설비투자가 부진하다는 점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분석. 금융계는 단기자금 비중이 지나치게 높아지면 금융시장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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