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팡질팡하는 개인투자자, 환매부담에 속타는 기관들과는 달리 최근 ‘사자’로 일관했던 외국인들이 머뭇거리면 증시는 뚜렷한 매수세력이 사라져 조정국면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일단은 우세한 것 같다.
▽연말엔 원래 쉰다=외국인 펀드매니저들은 연말이 다가오면 거의 예외없이 ‘북 클로징(book closing)’을 염두에 두고 매매에 나선다. 북 클로징이란 자산 부채 포지션을 고정시켜 위험을 최소화하자는 것으로 12월 중순경부터 시작되는 것이 보통.
이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매비중은 매년 12월에는 눈에 띄게 줄어든다.거래소시장 전체 거래대금에서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97년 11월 9.7%에서 12월 7.9%로 감소했으며 작년에도 11월 6.3%에서 4.6%로 줄었다.
▽올해는 빨라지나=특히 올해는 Y2K(컴퓨터 2000년 연도인식 오류) 문제가 겹쳐 북 클로징 시기가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증권가에서는 “최근 외국인 투자자금유입 러시는 장부를 덮기 직전 마지막으로 수익실현을 하기 위한 공세”라는 분석까지 나올 정도. 추수감사절 연휴를 전후해 이미 북 클로징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반대의견도 있다. 추수감사절 연휴는 최근 한국증시를 주도하고 있는 외국인투자자, 즉 홍콩에 기반을 두고 있는 펀드매니저들과는 무관하다는 것.대우증권 투자정보부 이정호 연구위원은 “그렇다 하더라도 북 클로징 시기는 다음달 초부터 서서히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안개속 증시=외국인들이 팔짱을 낀다면 악재가 많아 보인다. 장이 나빠지면 언제든지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있는 미수금과 프로그램매수잔고 합계가 2조2000억원이 넘는데다 투신권 스폿펀드 환매부담도 만만치 않다.
한누리투자증권 오연석 상무는 “외국인이 받쳐주지 못하는 12월에는 어느 정도 지수하락이 예상되지만 외국인 선호주인 통신 인터넷 전자상거래 업종 주식은 여전히 유망하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이 연구위원도 “다음달 초부터 중순까지 북 클로징을 앞둔 외국인들의 매매가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며 “이 때를 겨냥한 단기투자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조언했다.
외국계증권사 국내지점의 한 임원은 “연말 주가가 하락하면 오히려 주식을 사는 기회로 삼아달라는 외국인 고객들도 많다”고 전했다.
일단 연말을 ‘무난히’ 넘기면 한국시장을 빠져나갔거나 관망하던 외국인자금이 일시에 몰려와 내년 초에는 오히려 ‘버블’이 생길 가능성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정경준·이철용기자> news9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