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측은 빅딜 취지에 맞춰 재무구조 개선을 서두르고 있지만 채권단의 출자전환을 위한 실사조차 엄두를 못내고 있다. 지난해말 취임한 정훈보(鄭勳甫)사장은 아직도 사업장을 다 돌아보지도 못했다. 기존 3개사 노조와의 갈등 때문.
▽‘기형적인’ 통합〓생산직 사원이 1500여명에 이르는 한국철도에는 3개사 노조원이 병존한다. 더욱이 현대정공과 대우중공업은 상반기중 ‘조합원 범위를 신설 통합법인 노조원으로까지 확대한다’고 규약을 바꿨다.
사측은 “임단협시 실제 고용관계가 없는 대우중공업이나 현대정공 노조집행부와 씨름을 하게 됐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대우중공업 현대우주항공 삼성항공이 통합한 한국항공우주산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사측은 노조가 없던 삼성항공을 제외한 2개사 노조원들을 각각 상대해야 한다.
▽이상과 현실의 ‘틈바구니’〓이같은 기묘한 통합은 근로자들의 권익보호에 치중한 법규정이 구조조정의 취지와 충돌을 일으키는데서 비롯됐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은 자유로운 노조의 조직 및 가입을 보장하고 있으며(5조), 극단적인 경우 노조를 갖지 못한 A사 직원이 B사 노조에 가입할 수 있는 길(2사 1노조)까지 열어두고 있다.
노동부도 “어차피 2002년부터는 한 사업장내 복수노조를 둘 수 있다”며 법적 하자가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다.
한국철도 관계자는 그러나 “노동부 해석은 노조권중 단결권만 중시한 것”이라며 “사측과의 교섭이 원만치 않다면 근로자의 이익은 오히려 침해를 받게 된다”고 반박.
▽뜨거운 감자,‘노조전임자 임금지급’〓3개사 기존 노조가 선임한 철도차량 부문의 전임자는 12명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은 2002년부터 금지되지만 신설노조의 경우 그 전에라도 전임자 임금을 줄 수 없다. 3개사가 통합한 노조를 새로 만들면 전임자 임금을 받을 수 없다는 뜻.
철도차량측은 “기존 임단협 내용중 근로조건 부분은 그대로 승계하겠다고 약속했는데도 노조가 무리한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대우중공업 노조관계자는 “철도차량 부문만 독자 노조를 설립했다면 사측이 교섭에 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회사측의 ‘선(先)노조통합, 후 협상’방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근로자들의 동의 없이 이뤄진 통합에 대한 거부감도 배경 중 하나.
▽재계의 해결방안〓철차노조 문제는 재계가 추진하고 있는 인수합병 및 분사(分社)에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한국철도의 사례가 ‘2001년말까지 금지된 복수노조를 조기 인정한 셈’이라고 주장하면서 “통합 노조원들이 독자노조를 만들려 해도 기존 노조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모순이 있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은 법 규정을 고쳐 사용자측의 교섭거부권을 인정하거나 노동부 행정지도 등을 통해 노조통합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