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관계법 개정 '뜨거운 감자']노-사-정 3자3색

  • 입력 1999년 12월 5일 19시 56분


《내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정치권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를 둘러싼 노사충돌의 틈바구니에서 몸살을 앓고 있다. 발단은 여야 의원 30여명이 노동조합법을 개정, 2002년부터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한 기업을 처벌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의원입법을 추진 중인 것이 외부에 알려진 데서 비롯됐다. ‘돈줄’을 쥐고 있는 재계는 당장 “내년 총선 때 정치인들의 성향을 파악, 이들의 당락에 영향력을 행사하겠다”며 정치활동을 선언했다. 그러자 노동계는 “재계의 주장은 노사관계를 파국으로 몰아가려는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하면서 정치권에 대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 및 처벌조항의 무효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치권 "잘못 편들다…"▼

여야 지도부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금지 조항을 둘러싼 노사양측의 대립과 관련, 어정쩡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현재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때 처벌하도록 한 규정의 삭제를 골자로 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은 조성준(趙誠俊·국민회의) 등 노동계 출신 여야의원들이 의원입법으로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아직 관련 상임위인 환경노동위에 정식으로 상정도 되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회의의 경우 공식적으로는 “노사정위에서 협상이 진행되는 만큼 협상결과를 지켜보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국민회의에 우호적인 한국노총이 법개정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 이들의 목소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이 안되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사업장이 300명 이하의 소규모사업장인데 한국노총의 80%가 이들 사업장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회의 일부 당직자들은 전경련이 이와 관련해 정치활동까지 선언하는 등 초강수를 들고나오자 “그렇다면 정경유착을 공식화하겠다는 말이냐”며 불쾌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는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도 사안의 민감성 때문에 공식논평도 내지 않는 등 조심스러운 태도다. 다만 이부영(李富榮)원내총무는 5일 “이해당사자가 정치전면에 나서거나 정치권이 이해관계자들의 볼모로 잡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사대립이 정치권으로까지 확전되는데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이총무는 그러면서도 “모든 문제가 대화로 풀려야 한다”는 원칙론을 밝혔다.

〈공종식기자〉kong@donga.com

▼재계 "총선서 보자"▼

재계는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에 관한 한 ‘절대 허용 불가’를 고수하고 있다. “이미 여야 합의로 얘기가 다 끝난 사항이기 때문에 뒤집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최근 노동법 재개정 움직임에 대한 대응은 전에 없이 강경하다. 경제5단체 상근 부회장들이 3일 긴급회동을 갖고 “노조의 정치활동에 상응하는 정치활동을 벌여나가겠다”고 선언한 데 이어 4일에는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이 목소리를 높였다.

손부회장은 “전임자 임금 지급을 금지한 노동법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의원들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벌일 수도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같은 재계의 민감한 반응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이 재계 입장으로서는 힘겹게 얻어낸 ‘투쟁의 산물’이기 때문. 97년 3월 노동법 개정 당시 재계는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허용을 양보하는 대신 이 조항을 따냈다.

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야말로 노조의 힘을 ‘무력화’할 수 있는 실질적 무기라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재계는 전임자 임금지급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사실상 파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따라서 명분상으로도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것.

재계는 3일 경제5단체와 업종별단체로 구성된 경제단체협의회 안에 정치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구체적인 방향까지 제시했다.

재계의 이런 움직임은 일단은 노동계의 입장을 반영하려는 일부 의원들을 ‘압박’하기 위한 성격이 짙다.

〈이명재기자〉mjlee@donga.com

▼노동계 "冬鬪 본격화"▼

한국노총 박인상(朴仁相)위원장은 7일 기자회견을 갖고 “노조 전임자에 대한 임금지급을 처벌토록 한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 탈퇴는 물론 대정부 대사용자 전면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국노총은 또 17일 산하 전 사업장 노조가 참여하는 시한부 총파업투쟁을 계획중에 있으며 정기국회가 폐회하는 18일까지 노동관계법을 개정하지 않을 경우 노사정위를 탈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어 정부여당의 ‘공약위반’과 사용자측의 ‘노조탄압’을 규탄하는 대정부 대사용자 전면투쟁을 벌인다는 것.

한편 민주노총도 10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조합원 2만여명이 참여하는 제2차 ‘민중대회’를 열어 법정 근로시간 단축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측의 태도변화를 촉구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6일부터 정기국회가 끝나는 18일까지 매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앞에서 ‘노동시간단축 개혁입법 쟁취 결의대회’를 가진 뒤 이달말경 총파업 투쟁에 들어가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특히 핵심 현안에 대한 정부와 사용자측의 태도변화가 없을 경우 연대 총파업투쟁에 나서는 방안도 모색중인 것으로 알려져 노동계의 ‘겨울투쟁’ 파고가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노사정위는 이에 따라 공익위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잇따라 대책회의를 열고 노동 현안에 대한 절충안 마련에 나서고 있으나 노사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이 없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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