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가 이처럼 극한 대립을 보이고 있으나 정부는 조정기능을 상실하고 정치권도 재계의 ‘정치활동 불사’선언 이후 움찔하는 상황. 따라서 극적인 돌파구가 조속히 마련되지 않을 경우 대외신인도 하락 등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우려된다.갈등의 배경과 논리재계와 노동계는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관한 한 종전 입장에서 한발짝도 물러설 수 없다며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및 처벌조항의 ‘존치’ 및 ‘삭제’를 주장하고 있다.
재계는 ‘무노동무임금’ 원칙을 고수하며 97년 노동법개정 때 복수노조와 제3자 개입 허용을 양보한 대신 이 조항을 따낸 만큼 결코 양보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의 한 관계자는 “경제인들은 ‘우리의 시체를 밟고 법을 개정하라’는 결연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한국노총은 재계의 정치활동 불사 선언 이후 ‘치고 빠지기’전법을 구사하며 재계와 정치권을 압박하는 중이다. 노총이 이날 재계의 창구인 경총 대신 전경련회장실을 점거한 것은 경총의 정치활동 불사 선언에 이어 손병두(孫炳斗)전경련부회장이 4일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는 의원에 대해서는 낙선운동을 하겠다”고 경고한 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노총측은 손부회장으로부터 그 말이 엄포용이었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제출받고 5시간 만에 농성을 철회하긴 했으나 곧바로 박위원장이 직접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을 만나 담판에 나서는 등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국노총은 재계의 논리에 대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와 복수노조 허용 등은 별개의 사안”이라면서 “복수노조 허용 및 제3자 개입은 잘못된 법을 개정한 것이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은 잘 운영되던 것을 개악한 것이어서 전혀 맞바꿀 성질이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다.타협점은 없나그동안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에 대해 물밑에선 여러가지 타협안이 논의돼 왔다. 관련규정을 삭제하되 △사용자가 임금지급 의무가 없음을 명시하는 방안 △유급 전임자 상한선을 두는 방안 △전임자 임금은 노조가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하는 방안 △관련규정 시행시기를 3년 유예하고 복수노조 허용시기도 3년 유예하는 방안(현 노동조합법에는 2002년부터 시행하도록 돼 있음) 등.
한편 노사정위는 9일 공익위원회의를 열어 단일 절충안을 만들어 노사 양측에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현재의 분위기로는 어떤 절충안도 노사 양측을 만족시킬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정부도 뒤늦게 대안 마련에 나섰으나 노동부 관계자는 “절충안을 마련하더라도 노사 양측의 지지를 얻기는 어렵다”며 “결국 올해안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