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환율방어 선언]경제관료 생각없는 발언 禍 불러

  • 입력 1999년 12월 9일 19시 48분


원화절상(원―달러환율 하락)을 시사한 일부 고위 경제관료들의 사려깊지 못한 발언이 달러 투매와 환율쇼크를 촉발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강봉균(康奉均)재정경제부 장관이 “원화절상 흐름이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한 것으로 3일자 아시안월스트리트저널지에 보도됐다. 이 신문에 따르면 강장관은 “올해 외국인 직접투자규모가 연간 기준으로 사상 최대인 120억∼13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며 “만약 원―달러 환율이 1100원 아래로 내려가면 섬유와 같은 한국의 전통적인 수출업종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원화의 대폭절상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표현.

강장관 발언에 대해 시장은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했다. 싱가포르와 홍콩의 역외 선물환시장(NDF)에서는 국제환투기 자본이 앞다퉈 원화를 사들이기 시작했고 국내 외환시장의 딜러들도 팩스로 신문기사를 받아본 뒤 달러매도 주문을 냈다.

달러공급이 넘치는 상황에서도 간신히 1150원선을 지탱하던 환율이 7일부터 가파르게 떨어진데는 강장관의 발언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

지난달말에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수행해 필리핀 마닐라를 방문중이던 한덕수(韓悳洙)통상교섭본부장이 “일본 엔화가 강세를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원화도 수출경쟁력을 해치지 않는 범위내에서 상승할 여지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외신에 보도됐다.

한본부장은 한술 더떠 “한국기업들은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진행시켰고 금리는 금융위기 당시의 절반정도에 불과하다”며 “원화절상이 수출산업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는 것.

외환딜러 A씨는 “한본부장 발언에 반신반의하던 외국계 금융기관들은 약 1주일 뒤 강장관까지 비슷한 어조로 말하자 원화가 급격히 절상돼도 한국 정부가 본격개입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경제관료 두명이 잇달아 비슷한 취지로 발언한 것 때문에 외국의 전문가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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