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여개 한국 벤처기업들로 구성된 투자유치단이 실리콘밸리에서 투자설명회를 열었다. 하지만 초청장을 받은 실리콘밸리의 백인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한 마디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날 발표된 사업계획서도 경쟁사나 시장규모, 그 회사만의 강점, 최고경영자의 배경 등 관심있는 부분에 대한 언급이 부족했다.
한국기업들은 왜 실리콘밸리에 오려고 하는지 목적이 불분명하다. 정확히 말하면 목적이 너무 많아 초점이 없는 사업계획서를 준비해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국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으려는 것인지, 다른 기업과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것인지, 인수합병(M&A)을 겨냥한 투자를 받으려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미국 판매를 담당할 지사를 만들려는 것인지가 분명치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은 채 일을 진행한다.
이 때문에 특정한 대상의 관심을 끌 수 없고 상담을 해도 원론적인 내용만 오고간다. 모든 자료는 투자자의 입장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의 관심은 단 하나다. 이 회사에 투자하면 몇년 후 몇배를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서야 한다. 기술은 그 다음의 문제다. 제품과 서비스, 시장을 먼저 설명하고 기술은 뒤에 설명해야 한다. 목표에 맞게 사업계획서를 준비하고 목표가 여럿이면 사업계획서를 여러 버전으로 만드는 게 낫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투자심사 과정에서 창업자와 경영진을 가장 중요시한다. 기업이 겪게 될 장애물을 극복하고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전적으로 창업자나 경영진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에 한국 벤처기업가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미국 사회에서 신뢰를 얻고 있는 인물에게 반드시 추천을 받아야 한다. 우스갯소리로 ‘포스트잇’(누가 추천했다는 메모)이 붙어 있지 않은 사업계획서는 바로 쓰레기통으로 간다는 말도 있다.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또 자신이 시장과 기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분야에만 투자한다. 미국 서부의 투자자들은 대부분 엔지니어 출신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모르는 분야까지 공부해가며 투자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성공률을 높이려면 개별 투자자의 관심분야를 파악해 적합한 투자자와 접촉해야 한다. 미국 벤처 캐피털리스트들은 투자 후 이사회 멤버로 참여해 중요한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사회에도 꼬박꼬박 참여한다. 이를 위해선 회사가 자신의 사무실과 가까이 있어야 한다.
미국시장은 세계시장으로 진출하는 관문이다. 정보통신이나 생명공학 분야의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실리콘밸리로 가야 한다. 그러나 분야가 전혀 다르다면 미국 동부나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텍사스가 더 나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