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신용평가 확산, 부정-청탁대출 사라진다

  • 입력 1999년 12월 23일 18시 52분


한빛은행 고객이 은행 돈을 빌리려면 담당은행원보다는 컴퓨터 눈치를 봐야할 상황이다. 컴퓨터가 신청인의 소득 신용도 상환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대출여부와 한도 금리 등을 일괄 결정하기 때문.

한빛은행은 개인과 기업의 금융거래 명세 등 신용관련 정보를 △여신심사 △금리결정 △대출한도 관리 등에 반영하는 신용위험관리시스템을 내년 1월부터 전면 실시할 계획이라고 23일 밝혔다.

이와 비슷한 개념의 신용평가 제도를 실시중인 신한 하나 주택은행에 이어 자산기준 국내최대인 한빛은행이 ‘점수제 대출’을 택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새 시스템은 전 은행권에 급속히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거래은행의 지점장을 소개받거나 은행에 다니는 친구를 찾아가 대출청탁을 하는 관행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 셈.

▽은행대출 어떻게 바뀌나〓신용평가시스템이란 은행이 특정 차주에게 돈을 빌려줄만한지, 빌려준다면 얼마를 어느 수준의 금리로 빌려줄 것인지 즉석에서 따져볼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틀.

한빛은행은 개인과 기업의 신용등급을 평점에 따라 각각 10등급으로 분류하고 이중 하위등급에 대해서는 특별한 사유가 없는한 돈을 빌려주지 않기로 했다.

개인이 은행창구에서 대출을 신청하면 컴퓨터가 고객의 신상정보와 각종 금융거래 정보를 조회해 상위 30%(1∼2등급)는 10분이내에 대출승인 결정을 내리고 하위 20%(9∼10등급)는 대출을 거부한다. 나머지 50%(3∼8등급)의 고객은 3∼6시간의 본점심사에서 통과되면 신용에 따라 대출조건이 정해진다.

기업고객은 현금흐름 부채비율 산업위험도 미래재무상황 등을 감안해 등급이 결정되는데 1∼6등급의 ‘정상’업체는 손쉽게 대출을 받을 수 있는 반면 7∼10등급의 ‘문제’업체는 돈빌리기가 어려워진다.

▽어떤 효과가 있나〓지금까지 은행 대출은 지나치게 담보 위주로 운용된데다 담당자 개인의 ‘감(感)’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해 은행과 고객 모두에게 불편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뚜렷한 대출기준이 마련되지 않다보니 청탁 또는 압력에 취약해져 부실비율이 높아지고 이는 신용평가의 후진성을 초래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는 것.

새 제도가 정착되면 돈을 빌리는 입장에서는 객관적인 평가를 통해 자신의 신용도에 걸맞은 대접을 받게 되고 은행은 부실위험을 줄이면서 자금운용에 따른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한빛은행 홍승길(洪承吉)여신업무부장은 “대출심사에서 통과되더라도 어떤 등급을 받느냐에 따라 금리가 다르게 적용된다”며 “철저하게 차주의 능력에 따라 대출조건을 결정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재산이 많은 계층은 은행거래가 간편해지고 금리도 유리해지는 반면 소득이 적은 사람은 은행돈 빌리기가 훨씬 빡빡해져 은행대출의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박원재기자〉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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