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가 신동주씨 고백]"돈벌었지만 初心 잃었습니다"

  • 입력 2000년 1월 18일 20시 23분


“지난달 3일 코스닥에서 첫 매매가 시작된 뒤 18일간 상한가를 치면서 800억원대의 자산을 갖게 됐을 때는 참 혼란스러웠습니다.”

최근 벤처 붐과 함께 벼락부자가 된 벤처기업가들의 얘기가 세간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편에서는 너무나 빠른 성공에 대한 우려의 시선도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한 벤처기업가가 코스닥 등록 후 느낀 심정을 공개석상에서 솔직히 털어놓아 화제가 되고 있다.

인터넷통신장비 제조업체인 한아시스템의 신동주(申東柱·42·사진)사장은 17일 저녁 종합기술금융(KTB) 주최로 열린 ‘KTB 고객기업의 밤’ 행사에서 갑작스러운 성공에서 온 갈등과 다짐을 담담하게 털어놨다.

그저 일벌레로 살아오며 한푼 두푼 끌어모으기 바빴던 신사장에게 수백억원대의 자산은 도대체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고백이었다.

신사장은 “86년 변변한 패물 하나 없이 결혼한 아내 역시 혼란을 겪기는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아내는 예전에 신사장이 일에 미쳐 며칠씩 밤늦게 들어가도 10만원짜리 수표 하나만 갖다주면 그렇게 좋아하곤 했다.

‘의에 살고 의에 죽자’며 9년여간 한솥밥을 먹은 20∼30대 직원들은 우리 사주 덕분에 모두 부자가 됐다. 그런데 이달 초 창업 때부터 함께 일한 한 직원이 그만뒀다. 그는 나가면서 “우리 사주 팔자고 나가는 것은 아니니 오해마십시오”라고 말했다.

신사장은 본인이나 가족, 임직원 모두가 정신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삼겹살 집에서 직원들과 소주를 나누며 “창업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곤 한다.

“지금의 회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미국의 인터넷장비 업체인 시스코처럼 세계적인 회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시작입니다.”

아내와도 많은 얘기를 나눴다. 우리가 애들 교육시키는 것말고 큰 돈 들 일이 있겠느냐고. 지금 생긴 수백억원의 자산은 우리 것이 아니라 이 사회의 것이라고.

신사장은 대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91년 자본금 5000만원으로 창업했다. 지금까지 본인의 회사 외에 주식이라곤 가져본 적이 없는 ‘엔지니어’ 출신 벤처기업가.

신사장의 벤처기업 경영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거래은행의 담당대리에게 “대표이사를 두 글자로 줄이면 대리가 되니 나를 신대리로 불러달라”고 통사정을 해가며 운영자금을 마련했다. 97년말 외환위기가 터진 직후에는 6억원을 구하지 못해 부도를 내고 교도소에 들어갈 각오도 했다. “감방에서 그동안 못 읽은 책이나 봐야겠다”며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기까지 했다.

가까스로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다. 내수가 살아나면서 지난해 21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신사장은 창업 후 갖은 고생을 겪었던 시절을 회상한 뒤 “결국 기업은 펀더멘털에 충실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투명한 경영의 기술집약적 회사를 만들어 미국의 하이테크 업체들과 겨루겠다”고 다짐했다.

<김홍중기자> kima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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