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개월만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반전된 데 이어 이달에도 적자 우려가 제기되면서 무역흑자 기조의 종말을 예고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달 들어 16일까지 무역수지는 약 13억달러의 적자로 이달 전망도 낙관적이진 않다. 산업자원부는 “월말로 갈수록 수출이 늘고 있어 소폭의 흑자를 낼 것”으로 보고 있으나 중요한 건 당장 흑자냐 적자냐가 아니다. ‘월말 밀어내기’ 등 구태의연한 숫자놀음이 아니라 우리 무역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새삼 힘을 얻고 있다.
▽수입 연동형 수출구조〓무역수지가 악화되고 있는 1차적 원인은 간단히 수출보다 수입이 더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원유가격처럼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요인도 있지만 따지고 들어가보면 우리의 수출구조가 근본적으로 ‘수입연동형’이라는 데 있다.
최근의 수입급증은 무엇보다 수출의 본격 회복세에 따른 필연적 결과다. 98,99년 2년 연속 흑자를 내면서 635억달러의 기록적인 흑자를 낸 것은 수출호조 보다 수입감소에서 기인했다. 98년의 경우 수출이 2.8% 줄어들었는데도 수입이 무려 35.5%나 감소한 덕분에 무역수지는 9년만에 흑자를 냈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수출이 본격 살아나면서 이같은 ‘어부지리’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하루 평균 수입액을 보면 작년 1월 3억6700만달러에서 올 1월 5억3000만달러로 급증한 데 이어 2월에는 15일까지 5억7200만달러로 더 늘어났다.
수입 증가는 설비투자의 회복에서 비롯된 측면도 있다. 1월중 기계요소(50.4%) 정밀기계(46.6%)수입이 증가한 것은 놀고 있던 공장이 다시 돌고 신규설비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증거다.
▽부품 소재산업의 심각한 수입의존〓산업은행의 최근 조사는 우리 부품산업의 기술경쟁력이 선진국에 비해 50∼80% 수준에 불과하다고 결론지었다. 반도체 전자부품 자동차 등 수출을 주도하는 핵심 업종들이 모두 마찬가지.
요즘 한창 뜨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부품의 국산화율은 품목별로 45∼75% 수준. 업종이 고도화될수록 수입이 늘어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산자부에 따르면 총수입 중 부품 소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96년 36.4%, 98년 42.7%, 작년 1∼11월중 44.9%로 높아졌다.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와 비메모리반도체, 휴대전화의 핵심칩 등이 모두 수입부품이다. 최대 수출 1위 품목인 반도체는 수입에서도 1위인 ‘두얼굴’을 하고 있다. 우리경제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는 벤처 열풍의 이면에는 ‘수입의존성 디지털 혁명’의 모습이 보인다. 벤처기업들이 대거 창업한 작년 하반기 이후 유무선통신기기 컴퓨터주변기기 컴퓨터부품 등이 100∼400%의 수입증가율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량 위주 수출 한계〓‘수출 컨테이너는 갈수록 넘치지만 막상 손에 쥐는 돈은 별로 없다.’ 우리 수출구조의 ‘외화내빈’을 보여주는 게 수출단가의 하락세다. 전체 수출액을 수출물량으로 나눈 수치인 수출단가는 95년을 100으로 할 때 98년 60.5로 곤두박질쳤다. 이는 그동안 환율상승분을 감안하지 않은 것이지만 그만큼 고부가가치 제품의 수출이 안돼 있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력수출품이 메모리반도체처럼 국제시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품목 위주로 짜여있다 보니 국제가격에 따라 춤을 추게 마련.
석유화학 등 범용제품 위주의 전략은 필연적으로 다수의 경쟁자를 부르게 된다. 그만큼 ‘진입장벽’이 낮기 때문이다. 손쉽게 뛰어들어 당장 실적을 올리기는 쉬웠지만 이런 전략은 중국 동남아 등 신흥 경쟁국에 의해 ‘부메랑’처럼 우리의 수출채산성을 압박하고 있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