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中企플라자]감시제어 시스템분야 두각 '우리기술'

  • 입력 2000년 2월 21일 19시 42분


서울 관악구 봉천 4거리에서 서울대로 올라가는 고갯길 옆에 자리잡은 ‘우리기술’엔 유난히 기술이 많다. ‘우리의 기술로 세계를 재패한다’는 뜻으로 지은 회사이름 그대로다.

이 회사가 보유하고 있는 독자기술은 37종. 14종은 이미 특허를 획득했고 23종은 출원중에 있다. 요즘 인기를 끄는 휴대전화 ‘투넘버 서비스’도 사실은 우리기술이 2년전에 이미 특허출원을 해놓은 것.

“우리 회사는 무엇이든지 다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김덕우 사장(38)의 표정에는 패기가 넘친다. 서울대 공대 출신 5명의 젊은이가 창업한 이 회사는 기초 기술력이 탄탄한 업체로 업계에서 유명하다.

우리기술의 주력부문인 감시제어시스템은 국내 산업 가운데 기술적으로 가장 낙후되어 있던 분야 중 하나. 특히 원자력 발전소의 감시제어기기 분야는 이 회사가 뛰어들기 이전엔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지금은 우리기술 덕분에 미국이나 유럽의 대기업을 능가하는 수준에 올라와 있다.

우리기술이 그동안 걸어온 길은 ‘기술력 하나만 믿고 망망대해 사업전선에 뛰어든’ 벤처기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김사장이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박사 학위를 딴 뒤 연구실 후배 4명과 함께 봉천동의 11평짜리 사무실을 얻어 그야말로 벤처사업을 시작한 건 93년. 벤처라는 용어조차 생소한 시절이었다.

“후배들이 출근할 때면 부모님에게서 ‘얘, 이제 너도 취직해야지, 언제까지 그렇게 빈둥거리고 있을거냐’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였죠.”

창업자금 5000만원을 다 써버리고 당장 회사 운영 경비를 마련하려고 동전교환기니 감자튀김자판기 같은 돈되는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

공학박사가 사업을 하는 것도 당시로선 흔치 않은 일이었다. ‘대표이사’ 옆에 ‘공학박사’라고 적은 명함을 내밀면 그때까지 퉁명스럽게 대하던 상대방은 “아, 박사시군요”라면서 태도를 바꾸기도 했다.

우리기술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95년 원전 디지털 경보설비의 국산화에 성공하면서부터. 디지털 경보설비는 해외의 제어기기 전문업체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특히 최고의 안전성이 요구되는 원자력 발전소에 국내 설비가 채택되는 것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었던 때였다. 우리기술은 고리1호 원전 감시설비의 국제입찰에서 국내업체로 유일하게 참가해 웨스팅하우스 미쓰비시 등 쟁쟁한 외국 대기업들을 물리치고 계약자로 선정되는 ‘사건’을 일으켰다. 이후 우리기술의 기술개발에는 가속도가 붙었다. 공장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시하고 제어하는 최첨단 설비인 분산제어시스템도 선보였다.

벤처금융사들도 무명의 우리기술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거액을 투자자금이 들어왔다. 현재 우리기술의 사업 영역은 상시 도청방지 시스템, 지능형 교통제어기, 인터넷을 이용한 감시제어시스템 등 손가락으로 꼽기 힘들 만큼 다양하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